태왕사신기 방송 화면
‘문제는 사이즈!’라는 영화 카피가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사이즈에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반감을 갖는 편인데, 이 시간에도 사이즈 큰 작업을 하시느라 애쓰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참 무책임한 감정이다. 10여 년 동안 ‘크게 놀겠다’고 나온 놈들이 대개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데서 오는, 나름 ‘데고 물린’ 상흔이라고 변명해본다.

24부작 〈태왕사신기〉가 중반을 넘어섰다. 사극의 탈을 쓴 판타지인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고증을 논하는 것은 번지수가 한참  어긋나는 일. 고구려를 소재로 삼았다고는 하나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코드는 쏙 빼고 환타지로 길을 잡은 것은, 아시아와 세계 시장을 겨냥한 문화 상품다운 전략으로 읽힌다. 

처음 〈태왕사신기〉는, 스스로 세워놓은 커다란 골조 위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한류 지속’의 책임감을 어깨 위에 걸머진 배용준-담덕이 아니라 배우 배용준이다-의 과도한 ‘담담 카리스마’에는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문소리의 경쟁력 없는 목선과 옆모습은 안쓰럽기조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품이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태왕사신기〉는 취향의 짬뽕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난데없는 것들의 경연장이었다. 서양 환타지 작품에서 본 듯한 설정과 화면 연출에다, 한국 사극의 전통을 잇는 익살맞은 조연 캐릭터들의 조합. 타고난 대장장이 ‘바손’, 날 때부터 도끼쟁이인 ‘주무치’와 배우 오광록의 호연에 힘입은 책사 ‘현고’ 등이 그렇다. 호오가 갈리는 배우 최민수의 연기까지 놓고 보면 후일 키치적 감상의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급기야 인간인지 귀신인지 모를 처로의 괴기스럽고 환상적인 처소를 보고는 ‘돈이 없으면 저런 걸 못 만들었겠지’ 싶어 돈이 고마워지는 지경까지 되었다. 물론 ‘완전 몰입, 감동 만빵’이 아닌 이런 수준의 호감은, 돈을 쏟아부은 제작진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 귀엽더라!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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