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홍(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재판부는 주민소송 제도 도입 후 첫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지방의회 의정비 인상 논란이 한창인 시기에, 예산 집행을 감시하려는 주민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지난 10월17일, 주민참여 제도의 일환으로 도입된 주민 소송에 대한 첫 번째 판결이 있었다. 서울 성북구 주민들은 성북구의회 의원 및 직원들이 구 예산을 낭비했다면서 낭비 금액을 구에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성북구의회 의장은 단란주점 출입과 선물 구입 등에 업무추진비 1000여 만원을 사용했다. 구의회 의원 전원은 직원 13명을 데리고 호주로 해외 연수를 다녀오는 데 5600여 만원을 썼다. 성북구 주민들은 이를 문제 삼아 소송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주민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같은 업무추진비 사용에 허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민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물을 만큼 위법하지는 않다는 이유였다. 이 판결은 한국 사회에서 법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먼저 접대비를 살펴보자. 재판부는 단란주점이 직무 관련 대화를 나누기에는 ‘다소’ 부적절하지만, 접대부도 없었고 접대 횟수도 1년에 25회 정도로 잦은 편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사회 통념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년에 25회면 거의 2주일에 한 번이다.

무엇보다 지출 서류 어디에도 접대한 상대방의 신분이며 몇 명이나 되는지, 또 접대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았다. ‘지방의회 운영 및 업무 유대’를 목적으로 관련자와 ‘간담회’를 가졌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법원은 ‘직무 관련성을 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같이 완곡하게 표현한 재판부의 고민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앞으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접대비를 남용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해외연수비도 그렇다. 재판부는 지방의회 업무를 잘 수행하려면 ‘지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폭넓은 국내외 연수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라는 ‘식견’을 보여주었다. 재판부의 ‘폭넓은 식견’은 연수 일정의 많은 부분이 관광에 할애되었지만 시찰 일정이 ‘일부’ 가미되었고, 의원들이 선진 문화 체험을 다녀온 뒤 방문 효과가 상당했다고 자부하니 ‘합리적 필요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시사IN 안희태10월 17일 서울행정법원은 성북구민이 제기한 주민 소송에서 주민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2시간여 시찰에 5600만원 지출이 낭비가 아니라면…

지방의회 의원과 직원들이 해외 연수를 통해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점은 공감한다. 하지만 구의원 25명 전원이 13명이나 되는 직원을 이끌고 모두 한곳으로 연수를 가야만 견문을 넓힐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7~8명씩 다섯 팀으로만 나누었어도 같은 비용으로 5개국을 시찰할 수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 합리적 필요성이 없는 지출임이 확인된 게 아닐까. 

게다가 5박6일 일정 중 해외 시설 시찰에 사용한 것은 고작 2시간40분이다. 주 의회 방문에 1시간40분, 브리즈번 시청 방문에 1시간을 썼다. 나머지 시간은 관광하는 데 사용했다. 2시간40분 시찰을 위해 5박6일 동안 관광에 5600여 만원의 예산을 사용한 것이 위법한 낭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낭비란 말인가. 이 판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외유성 연수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비 인상 논란이 한창이다. 많게는 74.8%까지 인상하자는 지자체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같이 빠듯한 예산에 지방의원들은 자신들의 의정비를 올리려 하고, 그들의 예산 집행을 감시·통제하려는 주민들의 노력마저 법원이 외면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 정착은 요원해진다. 성북구 주민들이 항소를 한다고 하니, 항소심 법원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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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지홍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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