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라 하기엔 현실이고, 현실이라 하기엔 분명 소설이다. 국제경쟁력을 구실 삼아 밤과 낮을 바꿔, 세계경제의 중심이 자리한 지구 반대쪽에 우리나라 표준시를 맞춰버린 대통령. 급기야 학습 집중력 강화를 핑계로 아이들에게 ‘시계 모자’라는 걸 씌운다. 시계 모자는 아이들의 뇌파까지 조정하면서 무한경쟁의 공부로 내몰고, 그런 시계 모자를 비판하는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착용을 거부하는 아이들은 특수반으로 격리된다.

특수반 아이들은 반(反)시계 모자 카페를 만들어 시민 단체와 함께 시계 모자 의무 착용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헌법 소원도 한다. 이들이 마침내 승리하는가 싶었지만 특수반 리더 구실을 하던 학생 기우가 압력을 못 견디고 시계 모자를 착용하게 되고,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강화 학교’로 가게 된다. 강화 학교를 탈출해 ‘지하 도시’로 떠났다는 소문이 도는 기우. 기우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교과부는 ‘18금’ 딱지 붙이고 싶을 듯

지하철 폐지 노선에 노숙자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지하 도시에는, 지상에서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이들이 모여 산다. 기우를 비롯해 강화 학교에서 탈출한 학생들도 지하 도시에 모여들고, 이들은 지하 도시 사람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에서 비판적 메시지를 퍼뜨리고 시민적 연대를 구축해나간다. 기우가 수용되었던 강화 학교는 시계 모자를 착용한 부작용으로 정신분열 증세를 겪는 아이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정부가 지하 도시를 그대로 두고 볼 리 없다. 지하 도시 지휘부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는 정부. 이제 기우는 시계 모자를 무력화하기 위한 결정적 반격에 나선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사람의 본성인데 공포로 사람을, 이 세계를 움직이려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래서 바로 공포의 상징인 지하도시와 강화 학교에서 공포를 희망으로 바꾸어보려는 거야. 공포의 대상인 이곳에서조차 살아 있는 사람들이 희망을 꿈꾸고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거야.”

이른바 디스토피아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법도 한, 이 소설 아닌 소설은 우리 교육과 사회 현실에 대한 신랄하기 짝이 없는 풍자이자 우화이며, 소설 작품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다. 혹시 또 모르겠다. 우리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책에 ‘18금’ 딱지를 붙이고 불온 도서로 지정하고 싶어 할지도…. 연작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이자, 교육 현장 경험과 교육개혁 운동 경험이 풍부한 저자의 내공이 ‘불온한’ 우리 시대를 가차 없이 질타한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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