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윤 추구의 냉혹함, 자본가의 횡포 같은 어두운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쓴 경제사다. 1962년 초판이 나온 이래 13차례 개정되었다. 단순한 역사서는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체제가 어떻게 발달했고 어떤 구조와 논리를 갖고 있는지, 무엇보다 얼마나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진화해왔는지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가 생산 및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세 가지밖에 없었다. 첫째, 직업의 대물림 같은 전통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다. 둘째, 통치자의 명령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다. 셋째, 시장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다. 이 가운데 시장이라는 해법은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황당한 아이디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도 명령하지 않는데도 질서와 효율성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시장 사회가 출현할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득을 추구하도록 경제활동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분 사회가 사라지고 대신 계약 사회가 나타나야만 한다. 즉 사람들이 타고난 지위에 따라 제약받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지위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94쪽).” 전통과 명령을 넘어, “미래가 성장, 축적, 팽창, 변형 등과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관념되기 시작한 것은 오로지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생겨난 일이다(530쪽).”

자본주의는 종종 문제의 근원으로 호명된다. 혹은 무조건적으로 찬양받는다. 이 책은 양극단에서 한발 떨어져 이 독특한 체제를 바라보게 해준다. 여운이 길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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