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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사관 피습 배후에 미국 CIA가 있다

국내 언론은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 피습 사건에 반(反)김정은 조직이 있다고 보도해왔다. 하지만 스페인 수사 당국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를 겨냥한 CIA가 배후에 있다고 의심한다.

스페인 마드리드·호세 마리아 이루호 기자 (<엘파이스> 탐사보도팀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4월 08일 월요일 제6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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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2월22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에 괴한 10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폭행하고 각종 자료를 뒤졌다. 이 대사관은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 협상을 담당했던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가 2017년까지 대사로 근무한 곳이다. 3월26일 스페인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의 주범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멕시코인 에이드리언 홍 창이라고 발표했다. 용의자 에이드리언 홍 창은 습격 직후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번 사건을 두고 스페인과 미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스페인 경찰과 국가중앙정보국(CNI)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일간지 <엘파이스>도 3월13일부터 CIA 개입설을 보도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북한 대사관 피습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P Photo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 대사관 전경. 2019년 3월13일 촬영.

그동안 국내 언론은 미국 언론이 전하는 소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데 바빴다. 3월15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이 사건의 배후에 반 김정은 조직인 ‘자유조선(천리마민방위, 3월1일부터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꿈)’이 있다고 보도했을 때에도 대다수 국내 언론은 이를 그대로 번역해 소개했다. 3월26일 ‘자유조선’이 “마드리드 북한 대사관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폭력행위는 없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에도 그 내용을 검증 없이 그대로 다루었다.

<시사IN>은 이번 사건을 직접 취재한 특별 기사를 준비했다. 오랫동안 스페인 수사·정보 당국을 취재한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 호세 마리아 이루호 탐사보도팀장의 특별기고 전문을 싣는다.

유럽 언론계에서 명망 높은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이루호 팀장은 이번 사건에 CIA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사건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미국 언론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루호 팀장은 2014년 2월, 스페인 언론인 가운데 유일하게 김혁철 대사를 직접 인터뷰했으며, 이번 피습 사건이 일어난 마드리드의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도 두 차례 방문한 바 있다. 2017년 12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2017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 2017)’에 참석해 한국 독자들에게 <엘파이스>의 탐사보도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Reuter
2월28일 마드리드에 있는 북한 대사관 입구에 스페인 경찰차가 정차해 있다.
ⓒEL PAIS 갈무리
오른쪽은 북한 대사관 피습 사건에 CIA 배후설을 보도한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의 홈페이지 화면.
2014년 겨울, 내가 김혁철 대사가 갓 부임한 600m² 규모의 호화로운 마드리드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 건물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곳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날 오후, 빈 수영장, 테니스장, 농구장, 바람에 흔들거리는 그네들이 있는 드넓은 정원에 북한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마흔여덟 살 북한 대사는 직원들이 응접실에 가져다놓은 소파에 앉아 <엘파이스>와 인터뷰했다. 불편한 질문이 가득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국가의 대변인이 스페인 언론에 허락한 유일한 인터뷰였고, 3년 후 김혁철 대사는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기피 인물로 지정되어 추방당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마드리드의 신흥 개발지구 몽클로아아라바카에 위치한, 스페인 국가정보국(CNI·Centro Nacional de Inteligencia)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이 대사관은 의문스럽고 거짓말 같은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한가롭게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2월22일 오후, 모조 총기로 무장한 괴한 10명이 대사관을 습격해 김혁철 전 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컴퓨터·문서·전화기를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내게 열다섯, 열여덟 살 두 딸과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 침착한 엘리트는 이후 북한의 국무위원장이자 핵개발의 수호자인 김정은의 충실한 고문관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해외의 특정 정보기관이 그의 비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혁철 대사가 마드리드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그는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분을 만나고 알게 되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대원수 김정은 동지를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분은 인민의 삶과 경제 발전을 위해 애쓰고 계신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위대한 대원수를 알게 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대미특별대표로서 평양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변인 스티븐 비건과 비핵화를 조건으로 경제제재 해제를 협상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진행에서도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대사관을 습격한 괴한들은 테러리스트처럼 빠르고 차갑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우두머리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멕시코 국적의 인물로, 스페인 수사 당국에 따르면 사건 발생 6시간 전 마드리드의 한 가게에서 ‘전투 물품’을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홍 창은 사건 2주 전 만난 대사관 실무자 서윤석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자신을 캐나다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북한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사관 직원의 부주의를 틈타 대사관 문을 열고 나머지 요원 9명을 들여보냈다.

용의자는 스페인서 활동하는 CIA 협력자들


악몽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됐다. 괴한들은 철봉, 칼, 마체테(정글도), 모조 총으로 무장했다. 최근 재판을 맡은 스페인 판사는 괴한들이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입을 막고 손을 포박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사관 실무자인 서윤석을 나머지 직원들로부터 격리하고 화장실에서 그를 심문했다. 홍 창은 그를 모조 총으로 위협하며 김혁철에 관해 물었으며, 서양 국가로 도피할 수 있게 해줄 테니 망명하라고 제안했다. 서윤석은 대사관 직원 중 김혁철 전 대사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다.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직원들은 손이 결박당하고 머리에 비닐봉지를 쓴 채 공포에 떨었다. 조사관 중 한 명은 “괴한들은 직원들을 협박하며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협박당한 직원들은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피습 사건 닷새 뒤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양자 회담이 열렸다. 양국 정상이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국제사회의 관심이 이 회담에 쏠렸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요란한 실패로 끝났고 양쪽 대표단은 아무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회담장을 나섰다. 그날 북한 대표단을 이끈 인물이 바로 김혁철이었다.
ⓒAP Photo
2월26일 북·미 정상회담 당시 베트남 동당역에서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운데)의 모습.

괴한들과 대사관 직원들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직원 중 한 명이 창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구조 요청을 들은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고 곧 순찰차 한 대가 대사관 앞에 도착해 내부와 연락을 취했다. 홍 창은 김정은 배지를 달고 나가서 아무 일도 없다고 경찰관을 설득했다. 그는 태연했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몇 분 후, 정문을 통해 차량 두 대가 전속력으로 대사관을 떠났다. 김혁철의 전 거처를 습격한 괴한들이 그 차량을 몰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차량을 버리고 각자 흩어져 도보로 도주했다.

최근 이 조심스럽고 의심스러운 피습 사건에 미국의 정보기관이 연루되었다는 단서가 포착됐다. 대사관 외부 보안 카메라에 찍힌 괴한들의 사진과 도주 차량의 바퀴 자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계 두 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스페인 정보국에 따르면 이들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거대한 촉수를 펼치고 있는 CIA의 협력자들이다. 사건을 조사한 판사 데 라 마타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홍 창은 사건 당일 스페인에서 출국해 24시간 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 도착한 것으로 밝혀져 CIA 연루설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사건 발생 나흘 뒤인 2월27일 그는 FBI와 접촉해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동영상 자료를 제출했다.

홍 창은 FBI에, 북한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인권 단체의 일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무기를 비롯한 다른 정보’를 수색했다고 주장했다. 대사관을 습격한 괴한들은 USB 2개, 컴퓨터 2대, 보안 사진이 담긴 하드디스크 2개, 휴대전화 1대를 훔쳤다. 수사 당국은 습격 배후를 밝히는 데 조심스러워하며, 이번 습격의 목적은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인 김혁철 전 대사를 가장 잘 아는 서윤석을 데려가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모든 단서가 CIA를 가리키고 있다”

미국 첩보기관이 연루되었다는 확신이 들자 수사 당국은 CIA와 스페인에 거주하는 그 대표들에게 혐의를 제기했다. 스페인 정보국의 비공식 출처에 따르면, CIA는 스페인 정보국 관계자들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부정(否定)(una negativa que aquí no se cree nadie)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스페인 영토에서 이번 CIA 작전만큼 뻔뻔한 사건이 벌어진 건 수십 년 만이다. 유럽에 있는 대사관을 공격하는 것은 극히 심각한 일이다”라고 수사에 참여한 경찰관이 말했다.

로버트 팰러디노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이번 습격과 무관하다”라고 발표했지만, 무장 집단의 리더가 미국으로 도피한 것과 자신이 얻은 정보를 FBI에 넘겼다는 사실은 아직 증명되지 못한 스페인 조사 당국의 의심에 충분한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피습 사건의 배후에 탈북을 장려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엄격한 독재에 대항하는 반체제 단체 ‘자유조선(천리마민방위)’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조선 측은 자신들이 마드리드 대사관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어떤 형태의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페인 당국에 따르면, 자유조선 웹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으며 ‘단순 정치선전’에 불과하다. 스페인 수사 당국은 괴한들 중 미국 국적을 지닌 한국계 이우람과 샘 류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그들이 대사관 직원 포박에 사용된 물품을 사기 위해 철물점에서 600유로를 지불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AP Photo
2월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스페인 정보국 측 출처에 따르면, 자유조선은 이번 대사관 피습과 직원 납치만큼 계획적이고 전문적인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스페인 내에서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현재까지 모든 단서가 CIA를 가리키고 있다”라는 게 스페인 정부 당국의 공식 의견이다. 스페인 외무장관 주제프 보렐은 영국의 유명한 스파이 영화를 언급하며 이번 피습 사건을 ‘제임스 본드의 부활’이라고 일컬었다.

스페인에서 CIA가 작전을 수행한다는 가정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많은 반테러 투쟁 책임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미국 정보 당국은 작전을 수행할 때 동맹국도 국경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하디스트 수감자들을 모로코의 비밀 교도소로 이송하기 위한 비밀 작전부터 마약 유통 소탕 작전까지, 미국 정보 당국은 스페인 당국의 사전 동의 없이 스페인 영토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에두아르도 아기레 스페인 주재 미국 대사가 2007년 10월2일 워싱턴에 보낸 비밀 메시지가 유출되는 사건도 있었다. 바르셀로나 미국 영사관에 스페인 정부 몰래 반테러 운동을 총괄하는 지휘소를 설치했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2014년 북한의 조심스러운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김혁철 대사가 유럽 도시 마드리드에 부임했을 때, 그는 북핵 개발을 공공연하게 지지했다. “우리 동포들과 조국을 지키려면 핵무기가 필요하다. 우리 체제를 끝장내려는 세력들이 너무 많다. 당신들은 자신의 조국이 괴롭힘당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냥 참고만 있을 건가.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고 있겠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보장만 한다면 핵무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제안했지만, 미국은 1956년부터 매년 더 많은 핵무기를 남조선에 가져다주고 있다. 전쟁은 끝난 적이 없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북한의 사형 제도를 거리낌 없이 옹호했다. “우리는 우리 주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주 특수하기 때문에 사형 제도가 있는 것이다. 당신 나라에는 사형 제도가 있는가?” 그는 자연스러운 주제로 대화하듯이 물었다.

좋은 와인을 즐기고, 대화 중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도스토옙스키를 인용하며, 연극과 오페라를 좋아하던 이 남자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거대한 도전에서 핵심 인물이 되었다. 평양외국어대학교에서 영미 문화를 전공한 이 인물(김혁철은 평양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은 전능한 김정은 위원장의 귀에 조언을 속삭이며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국과의 협상을 좌우하게 됐다.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을 습격한 의문의 인물들도 바로 그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했던 조언들을 알아내기 위해 습격을 감행한 것이다.

비밀 정보를 찾는 외국 요원들에 의해 피습 피해를 당한 이 친절한 대사는 단 한 질문을 제외하고 내가 준비한 모든 질문에 답해주었다. “당신의 지도자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질문을 넘겼지만 모른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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