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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가 달리 보인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9년 02월 26일 화요일 제5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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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의원의 원도심 건물 매입 논란 취재 때문에 목포를 두 번 찾았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문화재 등록 여부를 미리 알고 측근을 통해 차명으로 구매해 시세 차익을 노렸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취재였는데, 논란이 되는 사안 외에도 목포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목포는 남도 섬에 가기 위해 자주 찾던 곳이었다. 쇠락한 지방도시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었는데, 이번에 취재차 구석구석 살피니 달리 보였다. 문제가 된 번화로도 낯선 곳이 아니었다. 번화로에 있는 영란횟집은 목포에 갈 때 꼭 들르던 맛집이었다. 번화로에 있는 ‘행복이 가득한 집’ 역시 커피를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취재하려고 내려왔다 하니 목포의 지인은 “김대중 대통령이 사면 복권되고 내려왔을 때만큼 기자들이 많이 왔다”라며 신기해하면서 문제가 된 번화로가 일제강점기 시절 목포의 본정통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번화로는 이름과 달리 쇠퇴의 길을 겪고 있었다. ‘초원실버타운’은 ‘초원관광호텔’이 바뀐 곳이었다.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대형 건물은 실버산업 시설로 바뀌고 있었다.
ⓒ시사IN 양한모

번화로를 가로지르는 길도 ‘민어의 거리’ ‘건해산물의 거리’ ‘빛의 거리’ ‘1897 개항문화의 거리’ 등으로 불렸지만 과거의 번영을 다시 불러오지는 못했다. 여기저기 적산가옥을 돌아보며 역사의 퍼즐을 맞춰보다 보니 문득 ‘이 거리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일제강점기 때였을 수도 있겠다’는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쇠락한 풍경 뒤로 일본 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호남은행 지점, 백화점이 있던 번화로를 떠올려보았다.

내화 벽돌을 만들던 조선내화 공장 부지를 방문했을 때도 만감이 교차했다. 그 시절에 저런 장치산업을 할 수 있었던 이훈동이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가 이룬 막대한 부의 흔적은 ‘성옥기념관’에 드러나 있었다. ‘경상도 정권’이 아니라 ‘전라도 정권’이 들어섰다면 그가 반도체 산업의 주역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목포 인구는 줄고 있다. 아파트 단지 건설 여부를 놓고 시끄러웠던 조선내화 공장 뒤로 고하도와 유달산을 잇는 케이블카 공사 탑이 보였다. 목포에서 돈은 이상한 곳으로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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