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지음해냄 펴냄
한 달쯤 전 고정 필자 김현진씨와 교신을 한 적이 있다. 책을 준비하고 있노라는 그녀에게 책의 콘셉트를 물으니 ‘자기계발서, 너 길에서 만나면 죽여버린다’ 정도 될 거라며 웃었다. 그 책이 나왔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해냄 펴냄)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쿨하지 않아도, 못생겨도, 좌충우돌해도, 사랑받지 못해도, 울어도 괜찮아, 다 괜찮아.

그녀는 인기 있었던 자기계발서의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니 치즈를 누가 옮겨놨는지 지금 알기나 하냐, 부자 아빠 될 대책은 있냐, 20대 안에 ‘쇼부’ 안 보면 넌 망해 이 계집애야, 맛있는 마시멜로가 있다고 홀랑 먹다니 정신이 있냐 없냐, 폰더 씨처럼 위대한 하루를 보내려면 열심히 살아야 하니까 긍정의 힘을 발휘해서 개처럼 일하라.’ 결론은 이렇다.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 텐가!’ ‘지금 니 상황에 잠이 오십니까’ ‘지금 니 팔자 조져놓은 건 바로 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자기학대서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그녀는 책에서 위로를 얻고 싶어서 서점을 찾으면 ‘좋은 친구’ 같은 책밖에 없어서 쓸쓸했다. ‘항상 웃어라, 노력하면 복이 와.’ 그런 소리 말고 ‘사람이 어떻게 항상 웃겠냐. 노력한다고 다 되냐’라는 얘기도 좀 듣고 싶었다는 것. 그녀는 작정하고 나쁜 친구 노릇을 자임했다.

‘나쁜 친구 노릇을 해주겠다면서 자기 얘기 안하는 것은 반칙 같아서’ 그녀는 시시콜콜 자신의 내밀한 경험들을 들려준다. 연하남과 사귄 얘기, 연상남과 연애한 얘기, ‘빵잽이’ 남자친구로부터 들은 감방에 명품이 넘쳐나는 이유, 비가 오면 하수구가 넘쳐 양동이를 들고 대적해야 했던 지하 셋방살이 이야기, 심지어 훔친 신 김치로 허기를 면해야 했던 얘기.  7~8년 전 고교 자퇴생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원에 당당히 입학했다고 해서, 이후에는 글 솜씨가 발칙하다고 해서 꽤 입에 오르내렸던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고백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투성이여서, 이거 너무 많이 듣는 것은 아닌가 괜스레 미안해진다.

박한 감독의 ‘어이없는 작전’ 떠오르는 이유

경험담이 많지만, 세대 의식을 놓치지 않는 덕에 그의 이야기는 신변잡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이 주변 친구들의 문제로, 결국은 한국 사회에 대한 얘기로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도대체 난 누구지? 우린 뭐예요?’라고 물으면 세상은 아주 쉽게 대답해준단다. ‘너네는 말이야, 골이 빈 세대야. 너네는 이태백이야. 너네는 밤낮 고시만 보는 애들이야. 너네는 부모님 뼛골 빼먹는 애들이야. 너네는 생각이라곤 없는 애들이야.’

그녀에 따르면 20대는 어떠한 경쟁력이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것을 얻었든, 살아남기만 하면 그것이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알아버린 ‘차가운 자본주의의 아이들’이다. 10대 시절에 목격한 외환위기를 통해 ‘다 굶어 죽을 거다!’라는 공포를 각인했다. ‘20대는 단 한 번도 시스템을 탓해볼 여유가 없었다. 20대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이자 불운은, 맞서 싸울 그 어떤 대상도 딱히 없었다는 거지만 그건 정말로 싸울 대상이 없었던 게 아니라, 모든 것과 다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승자 독식의 세계에 미약하게나마 저항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녀가 찾아낸 것은, 의외로 슬퍼하기이다. 슬퍼하기는 그저 자기 연민이 아니라, 남의 일에도 슬퍼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녀는 온 사회가 단체로 앓고 있는 ‘이놈의 쿨 병’을 떨치라고 말한다. “슬픔마저 포기해버린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괴물이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아요.”

이 책의 압권은 박한 감독 이야기이다. ‘악착같이 지는 고려대 오빠들 편에 붙은 건 작전 타임 때문이었다. (연세대 농구팀의) 최희암 감독은 자석판에다 빨간 자석과 파란 자석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뭔가 멋지게 작전 지시를 했지만, 훗날 인터넷 유머난에 오르내릴 정도로 ‘작전 없는 농구’로 유명했던 박한 감독은 종이에다 매직으로 뭔가 찍찍 그리면서 버럭버럭 열심히 말했는데 그 지시라는 것들이 가관이었다. 예를 들면 “얘들아, 지금 상황이 어떤 거냐 하면, 지금 30초가 남았잖아. 그동안에 우리가 골을 넣으면 이기고 못 넣으면 져. 알겠지? 가라!” “얘들아, 너네가 지금 안 되는 게 딱 두 가지가 있어. 그게 디펜스랑 오펜스야. 그거 두 개만 잘하면 돼. 알겠지? 가라!” 그때 카메라에 잡힌 오빠들의 표정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오늘까지도 오빠들의 그 표정, 여드름 송송 난 그 얼굴들이 생생하게 살아 그토록 사랑스러운 이유가, 어른이 되어보니 이놈의 인생이란 게 참 종종 박한 감독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너네가 안 되는 게 딱 두 개가 있어. 그게 잘사는 거랑 열심히 사는 거야. 그거 두 개만 잘하면 돼. 가라!”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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