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귀화한 김광용씨 가족은 대림동에 3대가 모여 살고 있다.
대동초등학교를 다니며 태권도를 배우는 아들은 김씨의 자랑거리다.

대림중앙시장에서 식당 ‘애민’과 ‘루이국수’를 운영하는 김광용 사장은 묘한 억양을 구사한다. 부산에서 오래 생활한 까닭에 부산 방언과 경북 방언, 중국 동북지역 방언이 뒤섞였다. “첨 왔을 때 암꾸도 없으니께네 한국인 형님이랑 계속 노가다를 뛰었거든. 내 감천항 방파제를 지었는데 얼마 전에 태풍 땜에 쓸려붓더라고. 하, 마음이 참 그렇데.”

경북 포항에 살던 김씨 외가는 일제강점기에 만주로 넘어갔다. 김씨의 외삼촌은 ‘많이 배운’ 엘리트였지만, 문화대혁명 영향으로 지역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밥상머리에서 외삼촌은 김씨 형제에게 한국 역사와 사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느이 박정희를 아나? 박정희가 원래 만주에서 군관학교 졸업한 거는? 그이 한국에서 대통령이었는데….”

한국에 오기 전 그는 랴오닝성 다롄시에 공장을 세운 한국 신발회사에서 근무했다. 한국 조직 문화라면 이미 익숙했다. 김씨는 2007년 태어난 지 100일 된 아이와 아내를 두고 먼저 한국에 건너왔다. 경남 지역의 각종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2013년 대림동에 자리를 잡았다. 6년간 떨어져 지낸 아이에 대한 감정은 애틋했다. 지금 대동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어느새 중국어보다 한국어를 편하게 쓴다.

그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귀화를 선택했다. 아직도 귀화 시험 보던 날 떨렸던 마음을 잊지 못한다.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야 하는데 4절에서 자꾸 가사를 까먹는 거라. 어휴, 귀화 시험 진짜 어려운 거예요.” 현재 대림2동 월세방에 살고 있는 김씨의 꿈은 더 넓고 쾌적한 집에서,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시사IN 신선영중국식 빵은 김씨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기자명 글 김동인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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