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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에 뛰어든 13명의 전사들

몽골군의 기세에도 장군 김경손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는 주저하는 병사들을 뒤로한 채 무사 12명과 함께 적진에 뛰어들어 승리했다.
병마사 박서는 분도장군 김경손에게 큰절하며 눈물을 쏟았다.

김형민 (SBS CNBC PD)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제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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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살리타이 장군이 이끄는 몽골군이 압록강을 넘으면서 30년에 걸친 몽골과의 전쟁이 시작됐어. 몽골은 순순히 항복하는 이들에게는 관대했으나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악마보다 더한 잔인함을 보여주었지. 몽골군은 고려 서북면의 각 성들에 공포의 바람을 불어넣었어. 지휘관들부터 내빼는 일도 흔했고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정주성의 분도장군(分道將軍), 즉 소규모 부대 지휘관이던 김경손은 자신을 따르는 정예 무사 12명과 함께 성 밖으로 출격했다가 돌아와서는 입을 딱 벌렸어. 성 안의 사람들이 죄다 도망친 거야. 거기에 몽골군 본대가 들이닥치니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해야 했지. 무사 12명은 계속 김경손을 따랐어. 그들의 목적지는 귀주성. 각개격파 당하느니 한데 모여서 싸워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각 수령과 지휘관들이 귀주성으로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김경손과 무사 12명은 몽골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불도 피우지 못하고 날고기를 씹어가며 적중을 돌파해서 귀주성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단다.

정주성의 분도장군 김경손은 고려 서북면을 침입한 몽골군을 막기 위해 귀주성으로 향했다.

김경손은 꽤 알아주는 가문의 일원이었어. 아버지 김태서는 평장사와 한림학사를 지냈고, 형 김약선은 자그마치 최고 집권자 최우의 사위로서 후계자 물망에 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가문이 자랑스럽지만은 않았을 것 같구나. 아버지 김태서는 학문에 힘쓰기는커녕 재물 욕심이 많고 탐욕스러워서 남의 땅을 탐내기 일쑤였어. 김태서가 길을 나설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막고 “어찌 우리 생계를 빼앗으십니까”라고 탄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형 약선도 지저분한 사생활로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니까. 김경손이 화려한 개경 생활을 마다하고 변방의 부장급 장수로 있었던 것은 그들과 엮이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장대한 기골에 한번 성을 내면 머리카락과 수염이 꼿꼿이 서는” 카리스마의 무장 김경손 눈에 아버지나 형은 얼마나 자잘하게 보였겠니.

마침내 몽골군이 귀주성을 포위하고 죄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문을 맡은 김경손은 분위기를 바꿔놓을 겸 성문을 박차고 나가 몽골군을 기습할 계획을 세워. 그런데 이 일을 맡아야 할 별초 부대가 그만 성 밖에 나가자마자 엎드려버린다. “죽여주십시오. 못 가겠습니다.” 땅에 엎드린 군대를 채찍질해서 내몰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 여기서 김경손은 우리 역사에 보기 드문 ‘돌격’을 감행한단다. 그는 무사 12명과 함께 몽골 적진에 뛰어들기로 한 거야.

머리 한복판에 뼈가 용의 발톱처럼 솟아 있었다는 이 특이한 외모의 장군은 투구를 깊이 눌러쓰고 끈을 조이고는 말에 뛰어올랐어. “가자~!” 어기적어기적 성문으로 들어가던 병사들은 입을 딱 벌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처음에는 애처롭게 쳐다봤지만 점차 눈빛은 자괴감으로 번졌고, 나중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병사들과 백성들 사이를 싸고돌았지. “우리는 뭐냐? 누구는 저렇게 목숨 걸고 싸우러 가는데.”

산전수전 겪은 몽골군이었지만 기백 명 대오도 아니고 단 열세 명이 자신들을 덮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 김경손이 내쏜 화살이 검은 깃발을 높이 들고 있는 몽골 기수를 향했어. 쉬익 소리와 함께 퍽 소리가 잇달아 나더니 몽골 기수는 말에서 굴러떨어지고 검은 깃발도 땅에 나동그라지고 말았지. 제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일단 당황해버리면 병아리 떼만도 못하게 된단다. 소수의 기습에 몽골군은 완전히 ‘말려’버렸어. 결사대는 몽골군 선봉대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지만 13명 모두 거짓말처럼 말짱했고 ‘쌍소금(고려 시대 악기)을 불며’ 돌아왔어. 귀주성 전체가 들썩거렸을 거야. 성루에 올라 전말을 지켜본 서북면 병마사 박서는 성문으로 달려가 김경손을 맞아.

그때 박서는 감정에 북받쳐 있었어. 정주의 분도장군 김경손 앞에서 박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쏟으며 큰절을 올린다. 하기야 무슨 말을 하겠니. 엎드려 끅끅거리며 눈물만 쏟는 박서를 보며 김경손도 화급하게 엎드렸지. 그 역시 울고 있었어. 박서와 김경손 두 무장은 서로에게 절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한국 전쟁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하나.

“김경손을 내 사령관으로 삼을 것이다”

ⓒGoogle 갈무리
평안북도 구성시에 위치한 귀주성 남문.
6·25 전쟁 당시 파괴된 이후 1979년에 복원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귀주성 공방전에서 고려 서북면의 수비군들과 백성들은 끝내 귀주성을 지켜낸다.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성과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몽골군이었지만 귀주성은 불가사리처럼 굳건했지. 그 정점에 박서, 그리고 김경손이 있었어. 몽골군이 쏘아댄 포차의 돌에 바로 옆 병사 머리가 날아가버렸을 때 “피하시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병사들에게 “내가 움직이면 너희들의 마음도 움직일 것이다”라고 의연히 버티는 장군 앞에서 어느 병사가 비겁할 수 있으며 어떤 백성이 도망칠 수 있었겠니.

그의 명성은 반란군에게도 통했단다. 1237년 오늘날의 전라도 담양에서는 이연년 형제가 ‘백제도원수’라 칭하며 백제의 부흥을 외치는 반란을 일으켰어. 이미 몽골과의 전란으로 정신없던 조정이 김경손을 전라도지휘사로 임명해 보내지만 그 병력은 단 30명이었어. 천하의 김경손이 단 30명을 데리고 자신을 막아섰다는 말을 들은 이연년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해. “김경손을 사로잡아 내 도통(都統·사령관)으로 삼을 것이니 절대 활을 쏘지 마라. 혹시 화살을 맞고 죽으면 안 된다.” 이연년은 그렇게 김경손을 ‘모시려’ 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어. 김경손을 포위하고 회유하려던 이연년은 되레 벼락같이 달려든 김경손 부대에게 체포돼 죽음을 맞았으니까.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누구도 따르지 못할 공을 세웠던 김경손. 반란군 두목도 “저분을 내가 사령관으로 삼으리라. 함부로 죽이지 말라”며 존중했던 김경손의 최후는 민망할 만큼 허무했어. 고려를 호령하던 집권자 최이가 죽은 뒤 그 서자인 최항이 권력을 쥐는데, 한때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던 김약선의 동생 김경손은 그저 눈에 거슬리는 존재에 불과했어. 김경손은 백령도로 귀양을 간다. 하지만 최항은 기어코 김경손을 꽁꽁 묶어 백령도 앞바다에 던져버려.

고려 최고의 용장이자 최대의 전쟁 영웅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죽어갔지.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과연 어떤 병사와 장군들이 칼 쥐고 창 겨눈 손에 힘을 줄 수 있었을까. 그와 함께 싸웠던 결사대와 귀주 백성들은 뭐라 했을까. 가끔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해. ‘왜 우리나라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용감히 싸운 사람들이 속절없이 희생당하거나 제명에 죽지 못하는 일이 이렇게 잦았을까.’ 물론 김경손 같은 이들은 “내가 대접받자고 싸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면서 수염 한번 꼿꼿이 세우고 말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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