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전문기자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은 ‘거품 붕괴’라는 시련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타이완은 독립 행보를 강화하며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미국은 동북 국경까지 죄어오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이 괴롭게 생겼다.
북방이 시끄럽다. 중국 공산당 제17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권력 장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2004년부터 시작된 그의 실험 역시 실패했다. 그 실험의 후유증은 중국의 미래를 가혹하게 죄어올 수도 있다.

후진타오 체제의 출범을 재촉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수이볜 타이완 총통이다. 2004년 3월 총통 선거 당시 그가 제기한 독립 시간표는 대륙을 흔들었다. 2006년 독립 헌법 제정, 2008년 독립 선언. 천수이볜의 가파른 독립 행보는 우유부단하고 현상 유지형인 장쩌민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을 대륙 지도부 내에서 불러일으켰다. 중원에 뜬 두 개의 태양 가운데 그들은 젊고 패기만만한 후진타오를 유일 태양으로 택했다.

후진타오의 선택은 명쾌했다. ‘타이완과 동북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적을 맞으면 안 된다. 두 개의 전선 중 타이완 문제는 시간이 걸리니, 단기에 해결 가능한 동북의 위험부터 제거한다.’ 동북의 위험은 바로 북한 핵 게임에서 비롯한 미·일 간의 대치 전선이다.

2004년 8월 후진타오 계열 천진사회과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북한 김정일 체제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요샛말로 하면 ‘간을 한번 본’ 것이다. 논문의 파장은 대단했다.

그때까지 잘나가던 장성택이 논문의 여파로 북한 권력 구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후진타오 계열이 장성택을 앞세워 체제 내부를 교란할 위험성을 사전에 제거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단 며칠 사이에 북한의 보위조직이 북한 내에서 암약하던 중국의 정보 네트워크를 깡그리 박살내버린 것이다.

2004년 9월 후진타오는 장쩌민을 밀어내고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까지 꿰참으로써 명실상부한 천하 1인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북한 내부 소식에 까막눈이 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결국 속마음을 감추고 상대를 껴안는 수밖에 없었다.

2004년 9월1013일 리장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은 후진타오 시대 북·중 관계의 첫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이 실로 오랜만에 김 위원장이 파안대소하는 사진을 내보낸 데서도 알 수 있듯, 김정일과 후진타오 두 동갑내기 지도자 간의 불타던 신경전이 끝나는 듯했다. 최소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라도 둘의 어깨동무가 이어질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후진타오 주석의 과신과 과욕이 대세를 그르친 것 같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껴안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끌어안는 제스처를 취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김정일 체제를 교체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진실을 담보하지 않은 그의 ‘대조선 정책’이 의심 많은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계속 통할 수 없었다. 

북한과 중국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2006년 초에 일어났던 정보 수집과 관련한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은 그가 직접 지시했든 아니했든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북·중 양국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두 개의 전선을 하나로 좁히려던 후진타오의 실험도 파탄에 직면했다. 동북의 대치 전선은 없어지기는커녕, 한층 더 가파른 긴장감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김정일 위원장이 급속히 미국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조만간 미·일 연합세력이 북상하게 생겼다.

그리고 이제 2008년이 다가온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은 중국에 축복일까 저주일까. 올림픽을 계기로 국가 위상이 높아진다는 점에서는 축복일 터이나, 축제가 끝나고 혹독한 청구서가 날아들면서부터 시련의 나날이 다가올지 모른다. 바로 거품의 붕괴이다.

더불어 2008년을 독립 추구의 호기로 삼고 그동안 몸을 낮춰왔던 천수이볜이 벼르고 벼르던 칼을 뽑아들었다. 유엔에 가입해 국제사회로부터 명실상부한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타이완 또한 핵 개발설을 흘리며, 중국의 턱밑에 크루즈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는 등 일전을 불사할 태세이다.

국내 경제의 거품 붕괴, 타이완의 독립 행보, 동북 국경까지 죄어오는 미국의 존재감. 17차 당 대회가 끝나고 중국은 달 탐사 위성을 발사해 13억 인민의 자신감을 한층 고취시켰다. 그러나 후진타오가 이끌 앞으로의 5년이 중국 인민에게는 편하게만 느껴질 것 같지는 않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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