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5~28일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급작스러운 정치 정세 변화에 대응한 임기응변이었다. 양국이 사전 조율을 거쳤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예상 밖 전격 행보로 비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 일행을 극진히 대했다. 김 위원장을 맞은 중국 쪽 인사들을 살펴보면 리커창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이자 국무원 총리, 왕후닝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왕치산 국가부주석 등 정치국 상임위원 수준의 최고위급이 나섰다. 또 딩쉐샹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중앙정치국 위원, 궈성쿤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정법위 서기, 황쿤밍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선전부장, 차이치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베이징시 당위원회 서기,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도 김 위원장과 각종 회동에 배석했다.

ⓒAFP PHOTO3월26일 북·중 정상회담 만찬에서 건배주로 쓰인 고급 마오타이주가 화제가 되었다. 마오타이주는 마오쩌둥 시절부터 외국 국빈에게 대접하던 술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시진핑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인식과 향후 대응 전략 및 노선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북한과 중국이 거의 동시에 관영 언론을 통해 정상회담을 공개한 것 외에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예우가 최고조에 달한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3월26일 환영 만찬에서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최고 국빈으로 예우했다. 수천만원이나 하는 마오타이주가 건배주로 나왔다. 국내 언론은 중국 누리꾼의 추측을 근거로 이 마오타이주가 1960~1970년대산으로 진품일 경우 한 병에 126만 위안(약 2억원)짜리 초호화 고급술이라고 보도됐다. 국내 언론 보도와 달리, 만찬장에 나온 마오타이주가 억대의 술이 아니라 1병에 약 25만 위안(약 4250만원)짜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1930년대 국민당 군에 쫓긴 중공군이 구이저우성에 도달해 지방 명주였던 이 마오타이주를 마시고 사기를 회복해 대장정에 성공했다면서, 마오쩌둥 시절부터 중국은 외국 국빈에게 이 술을 대접했다. 한 병에 4000만원이 넘는 고급술이 테이블에 올랐다는 점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특별한 배려다.

진짜 파격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주고받은 선물의 질과 양이었다. 먼저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 부부에게 전달한 선물은 산삼 1뿌리, 고려인삼 1뿌리, 청색 돌주전자 등 중국 돈 17만 위안(약 2890만원)어치 정도였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증정한 답례품은 높이가 3m에 가까운 대형 화조무늬 경태람 화병, 20개로 된 홍색 경태람 식기 1벌, 12개로 된 백자 다구 1세트, 1980년 이전에 생산된 아이쭈이 장핑 마오타이주 5병, 1990년대 생산된 페이톈 마오타이주 6병 등이다.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도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에게 브로치·귀걸이·반지 같은 장신구와 청화자기 모양을 수놓은 치마, 구름을 수놓은 각기 다른 디자인의 고급 비단 6필 등을 선물했다.

ⓒ조선중앙TV3월29일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왼쪽)이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에게 선물을 설명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부부가 김정은 위원장 부부에게 준 선물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247만 위안(약 4억18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준 선물 금액은 3000만원 정도였는데,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 준 선물은 3억2000만원 정도로 10배 넘게 차이가 났다. 양측이 주고받은 선물 품목을 보면, 현재 중국과 북한의 실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이 준 선물은 북한 경제 사정이 반영된 듯 산삼과 인삼, 돌주전자 등 단출한 품목이었다. 이에 비해 시진핑 주석이 준 선물은 부국답게 도자기, 최고급 술, 고급 비단 등 품목이 다양했고 가격도 매우 고가였다.

고가의 선물에 담긴 정치적 함의는?

시진핑 주석이 왜 김정은 위원장에게 파격적인 선물 보따리를 안겼을까? 압도적인 선물 공세에는 시진핑 주석이 어렵사리 회복된 북·중 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사를 재확인하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하는 등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변신을 격려하는 성격도 짙다. 또 다른 정치적 함의도 담겨 있다. 시 주석이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 위원장에게 어떤 ‘제안’을 했으며, 김 위원장도 그 제안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약속을 잘 이행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고가 선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번 방중 과정에서 북·중 양측 모두 당 고위급 인사가 총동원되었다. 북쪽에서도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 박광호 노동당 중앙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 리수용 노동당 중앙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김영철 노동당 중앙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이용호 외무상 등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수행 인사 면면을 보면 오랫동안 소원했던 조선노동당과 중국공산당의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둔 듯하다. 다음으로 북한 비핵화에 따른 중국의 대(對)북한 경제지원 및 중국 지도부의 의사 확인, 대미 대응 전략 조율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북한 비핵화에 상응하는 미국의 양보를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또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에 옮기면 중국이 북한에 어떤 경제지원이나 경제협력을 할지 북·중 사이에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중국이 북한에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제공하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두고도 대화가 심도 깊게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왕치산 국가부주석과 왕후닝 중앙상임위원이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혹은 경제협력 정책을 주도하리라 보인다. 이들은 북한을 점진적으로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체제, 즉 시진핑식 사회주의 독재로 유도할 공산이 크다.

중국 정부가 공개한 정상회담과 댜오위타이의 국빈관 양위안자이(양원재)에서 연 환영 오찬, 인민대회당에서 연 만찬에서 언급된 김정은·시진핑 발언을 살펴보면 양국이 현 정세에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무엇을 약속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고,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도 새로운 역사 시기에 진입했”으니 “우리는 북한과 함께 공동으로 노력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을 찾아 양국 관계를 회복하기로 한 것은 자신이 결단한 “전략적 선택”인데,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선배 지도자들의 숭고한 의지를 받들어 북·중 양국 관계를 계승 발전”시켜서 “새로운 정세에 직면한 양국이 더 가까워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점진적으로 시 주석이 권유한 시진핑식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로 나아가겠다는 의사를 완곡하게 밝힌 것이라고 해석된다.

기자명 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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