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성폭행 의혹이 불거지자 중앙대학교 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학생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고구마 줄기 캐듯 피해자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고 있다.”

중앙대학교가 한 교수의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술렁이고 있다. 시인이자 유력 문학지 편집장을 지낸 바 있는 문예창작과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학생이 이 사건을 학교 측에 알리고, 경찰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같은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학생인 장 아무개씨는 다음 학기 논문 지도교수인 감 아무개 교수로부터 글도 봐줄 겸 한 번 찾아오라는 이야길 듣는다. 

7월 12일 오후 1시, 학교 정문에서 만난 감 교수와 장씨는 차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감 교수는 장씨에게 거푸 술을 권했다. 잠시 후 감 교수는 장씨에게 “등단시켜주고, 다음 학기에 장학금도 주겠다”라며 자신의 애인이 돼줄 것을 요구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꼈으나 평소 감 교수를 믿었던 장씨는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심각한 일’은 교수회관에서 벌어진다. 오후 3시께 다시 학교로 돌아온 뒤 감 교수는 장씨에게 “서울로 가는 스쿨버스가 5시에 있으니 교수회관에 있는 내 방에서 쉬었다 가자”라고 권했고, 장씨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서자 감 교수는 돌변했다. 장씨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겼다. 완강히 저항했지만, 이미 술에 취했던 장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장씨가 주장하는 성폭행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등단과 장학금, 박사학위 등을 미끼로 “아무에게도 이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회유한 것이다. 갈등하던 장씨는 남편과 이 문제를 상의한 끝에 7월18일, 감 교수의 해임과 정신적·물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총장과 문예창작과 교수진에게 돌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교수진은 감 교수에게 질의서를 보내 해명을 요구했다. 감 교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며 사직 의사와 함께 피해보상금 1000만원도 함께 지급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감 교수가 사직 의사를 밝힌 지 닷새 뒤인 7월30일, 상황은 급반전된다. 갑자기 감 교수가 이 사건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 측에 지급했던 1000만원을 ‘지급정지’시킨 것이다. 이날 오전에 부총장 등 6인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가 열린 직후였다.

제2, 제3의 피해자도 잇따라

이 자리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출석해 사건의 경위를 밝혔다. 하지만 이날 진상조사위 측은 장씨의 입장을 옹호해온 이승하 교수(문화예술학과장)를 위원에서 제외해달라는 감 교수의 ‘기피 신청’을 받아들이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뿐만 아니다. 이날 감 교수는 “장씨가 사건 당일 오후 3시에 서울로 돌아갔다”라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했지만, 이후 학교 CCTV 확인 결과 장씨가 5시까지 학교에 있었음이 확인됐다. 허나 조사위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중앙대 대학원신문사 제공10월11일 열린 개교기념 행사에서 학생들은 박범훈 총장의 연설 도중 기습시위를 벌였다.
더욱 큰 문제는 진상조사위 자체가 학칙에 없는 ‘유령 기구’라는 점이다. 중앙대 학칙은 교내에 성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지체없이 ‘성윤리위원회’를 가동해 진상을 규명하도록 해놓았다. 그럼에도 학교는 적법성이 없는 진상조사위를 열었다.

성폭력사건 비상대책위 측은 “피해자가 산부인과 진단서 등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정보가 이날 조사위 자리를 통해 감 교수에게 흘러간 것 아니냐”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진상조사위는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채 뒤늦게 열린 성윤리위원회로 공을 넘겼다. 이처럼 사건 해결이 지지부진하자 피해자 장씨는 8월22일, 감 교수를 형사 고발하기에 이른다.

경찰의 수사 결과만을 기다린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뻔한 사건이 다시 불거진 계기는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나타나면서부터다. 2001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자신도 감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잇따른 것이다. 그들 모두 감 교수를 논문 지도교수나 전공교수로 ‘모셔야’ 했던 이들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0월16일, 중앙대 성윤리위원회가 개최됐으나 감 교수는 대리인을 통해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여학생을 모른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사건 관련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감 교수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있는 감 교수는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교수회관 내 숙소에서 잠시 머물다 갔을 뿐인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며 반박했다. 피해자 남편의 계좌로 1000만원을 보내는 등 사건을 무마하려는 행위를 한 점에 대해선 “사건의 실체와 관계없이 불명예스러운 일에 연루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아내가 내 허락 없이 한 일이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학교 측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 관계자들은 박범훈 총장의 비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05년 총장 선거 때 감 교수가 박 후보를 도왔고, 이후 예술대학장과 사회교육본부장 직책을 얻는 등 둘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자칫하면 중앙대 전체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7년간 적어도 세 건의 성폭행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 사건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중앙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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