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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항일투쟁 기억해야 할 이름들

만화가 박시백이 <35년>을 펴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 이후 5년 만이다. 이번에는 일제강점기다. 치열한 독립투쟁을 알리기 위해 그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불러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8년 02월 07일 수요일 제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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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이 없었을 리 없다. 전작의 성취가 워낙 빼어났다. 350만 부라는 기록적인 판매량은 수치일 뿐, 원본 글자 수만 4900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텍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살펴보고 재해석한 대중 예술 작품이라는 극찬이 잇따랐다. 작업 기간만 10년(2003~ 2013년)이 걸린 대작이었다. 만화가 박시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13년 나온 전작의 마지막 권(20권) 부제가 ‘망국’이었다. 동학 농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쳐 무너진 왕조를 담담히 그려가던 작가는 “독립투쟁의 길은 추위와 배고픔, 고문과 투옥, 가족의 고난과 곤궁이 예정된 길이었다”라는 암시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어쩌면 ‘후속작’을 예고하면서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5년 만이다. 이번에는 일제강점기다. 왕조가 막을 내린 그 지점부터 역사는 다시 흐른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35년을 만화로 그려냈다. 작품 제목도 <35년>이다. 1권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2권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3권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을 한 번에 펴냈다. 2019년까지 총 7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부담도 컸지만 사명감은 더 컸다. <35년> 집필 전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은 그 역시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전작이 그랬듯 ‘밥벌이 아이템’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되레 소명의식을 일깨웠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우리는 자학사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8·15 해방은 오로지 미국과 원자폭탄 덕이지,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영화 <강철비>에도 “우리 힘으로 독립을 못해서” 분단 조국의 비극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단언한다.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는 부단하고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라고. 이를 제대로 알리는 길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35년>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박 작가가 만난 독립운동가들은 너무나 의연했다. 투쟁 과정은 물론 법정에서까지, 인간으로서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선인으로 볼셰비키에 참여하고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당을 주도한 ‘김알렉산드리아’라는 인물이 있다. 러시아에서 영웅으로 평가받지만 한국에선 잊혔다.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반대파에 체포된 그녀는 “조선인이므로 뉘우친다면 석방해주겠다”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아무르 강변의 총살 현장에서 그녀는 열세 걸음을 걸은 뒤 이런 최후 진술을 남긴다. “지금 걸은 열세 걸음은 조선의 열세 개 도입니다. 조선의 13도 젊은이여, 여러분은 우리 후예가 조선을 해방시키고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하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조선 독립 만세! 소비에트 만세! 볼셰비키당 만세!”

집필 내내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김알렉산드리아 같은 이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빛을 잃고 만다. 결국 집필 과정은 그가 역사 속에서 이름을 불러준 인물들과 한 명 한 명 작별을 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많았다. 역사 교사로 구성된 <35년> 편집위원들이 매권 말미에 소개하는 인물사전만 해도 많게는 40쪽이 넘는다.

법정에서까지 경이로웠던 그들

때로 분열도 있었다. 실제로 사상과 노선으로 끊임없이 갈려 나가는 과정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운동가끼리 싸우다 볼 장 다 봤다는 식으로 평하는 건 왜곡이다. 오히려 독립투쟁의 길이 워낙 열렬하고 끈질겼기에 그런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이 사회주의든 민족주의든, 정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변절의 역사도 있었다. 윤치호처럼 적자생존을 설파하는 ‘사회진화론’에 빠져 일본에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라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어느 순간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한 사람도 있다. 안타까운 인물 중 하나가 오성륜이다. 상하이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탈옥한 뒤 나중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군수처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일성보다 더 늦게까지 만주에서 싸웠지만 이후 투항하고 옛 동지를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가 이후 삶의 방향을 달리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어떤 길을 걷는다는 게 그의 완전무결함을 뜻하는 건 아니니까.

독립운동가들이 무턱대고 투쟁만 외친 것은 아니었다. 누구든 무장투쟁으로 일본과 1대1 맞짱을 뜨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세계 질서에 대단히 민감했다. 일제의 대륙 침략 야욕을 분석해 언젠가 중국과 전쟁을 벌이거나 태평양을 둘러싸고 미국과 일전을 펼칠 것이라고 봤다. 그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무장투쟁은 무모함의 발로가 아니라, 현실적 방략이었다.

박시백 작가는 <35년>을 집필하며 해석보다는 기록에 충실하려 했다.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원전’이 없는 만큼 앞선 연구자의 많은 기록을 적절히 취사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유일하게 해석에 무게를 두고 ‘얄밉게’ 그린 인물이라면 3권까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정도다. 그가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어쩌다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되었는지 살펴보면 박 작가의 그림체가 이해될 수밖에 없다. 물론 박 작가는 그마저도 과도하게 ‘개입’한 것 같다며 후회하지만.

앞으로 그려가야 할 시대는 1926년 이후부터다. 문화 통치를 지나 1930년대 폭압기와 해방 직전까지 담아야 한다. 어쩌면 일제강점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기다. ‘인간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 스스럼없이 드러나는 때이기도 하다. 박 작가는 “이 시기가 관찰자로서는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 시대다”라고 말했다.

박시백 작가를 만난 날 올겨울 최강의 한파가 몰아쳤다. 사진 촬영 장소로 어디가 좋을지 물었을 때 그는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을 택했다. 칼바람 부는 독립공원에서 벌벌 떨면서도, 우리는 100년 전 북풍한설을 뚫고 중국, 러시아 등으로 떠난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인터뷰 이튿날 아침 박 작가는 취재와 여행을 겸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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