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1일 ‘빼빼로 데이’ 날 고재열 기자가 연락을 주셨다. ‘어? 웬일이지? 요즘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알고 혹시 초콜릿이라도 주려고 연락하셨나?’ 내심 기대에 차 “안녕하세요 기자님~” 하는데, 고 기자는 대뜸 2017년이 가기 전 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제안받은 그날부터 줄곧 ‘어떤 책을 추천하면 좋을까’ 하는 건강한 고민에 빠졌다.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그 일(국정원 문건에 내 이름이 나왔다는, 국가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실)이 있던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읽는 책이 있긴 한데…, 바로 불교 경전 중 하나인 〈지장경〉이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 때 성경을 읽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서로 읽기도 한다. 나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 어릴 적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작한 일인데 〈지장경〉을 읽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절에 다니셨다. 새벽 기도를 자주 하셨는데 자식이 많고 아버지도 사업을 하시니 엄마는 늘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업고 석굴암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남동생을 얻기 위해 백일기도를 다닐 때라고 하셨다. 그 기도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밑으로 남동생이 생겼다. 딸 넷 아들 하나, ‘독수리 오형제’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어릴 적 내 방은 부엌 옆에 붙어 있었다. 새벽마다 잠에서 깨곤 했는데 갓 지은 구수한 밥 냄새 때문이었다. 항상 시간을 확인했는데 여지없이 새벽 3시였다. 나는 그것이 늘 신기했다. 엄마는 알람 시계가 몸에 들어 있나? 어떻게 새벽 3시에 항상 깨서 밥을 하지? 이제 와 생각해보니 엄마는 새벽 3시에 밥을 안치고 새벽 기도를 하셨던 것 같다.

〈지장경〉(미니북)
법안 지음
안심 펴냄
엄마는 14년 전에 돌아가셨다. 내 가슴에는 너무나 큰 구멍이 생겼는데, 모두 다 후회로 남았다. 내가 해드린 것이 도대체 뭐가 있나? 얼마 전 〈지장경〉이라는 경전을 알게 되었고, 읽어드리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요즘은 새벽마다 엄마를 위해 읽는 중이다.

〈지장경〉은 지장보살에 관한 책이다. 지장보살은 어떤 일로 보살이 되었으며 보살행을 어찌 이루시는지 들려준다. 지장보살은 원(願)을 세우시길, 모든 육도 중생을 성불하게 한 후에야 자신의 원을 이루리라 하셨다.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은 〈지장경〉을 시시하거나 재미없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제는 곁에 안 계시는 엄마를 위해서, 이제라도 무언가 해드릴 수 있어서, 나의 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기 위안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깊고도 넓었던 나의 구멍이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 〈지장경〉을 읽는 것은 엄마와의 추억을 읽는 일이다.

기자명 김규리 (배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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