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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화벽 덕에 중국 인터넷이 발전하는 아이러니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webmaster@sisain.co.kr 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제5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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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선 제공
중국에서는 VPN 앱을 통해 유튜브 등에 접속한다.
12월 초 한국에 놀러 오는 중국 다롄 친구가 휴대전화 화면 갈무리 사진을 보내왔다. 화면 맨 위 왼쪽에는 VPN이란 글씨가 찍혀 있었다. 한국 폰을 로밍해온 여행객들이야 중국에서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쓸 수 있지만, 중국 현지 유심으로는 불가능하다. 중국공산당은 정보의 흐름과 언로를 통제하기 위해 자국 내에서 유튜브·구글·지메일 등을 차단한다. 나도 1년을 중국에서 살아야 하는 이상 현지 유심 구입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중국의 검열 시스템인 ‘만리장화벽(Great Wall)’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감을 의미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만리장화벽을 넘고 싶은 이들의 눈앞에는 VPN(Virtual Private Network)이라는 우회로가 펼쳐져 있었다. 폰에 VPN 앱을 깔고 다른 국가 IP 주소로 접속하면 지메일도 읽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바꿀 수 있었다. 하루는 싱가포르 IP, 하루는 미국 IP, 그날그날 속도가 제일 잘 나오는 IP 주소를 골라가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중국도 살 만한 나라군! 한국 친구들 게시물에 ‘좋아요’를 클릭하며 안도했다.

폰 화면 위 엄지손가락은 만리장화벽을 넘어섰지만, 정작 심리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이 쳐놓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의심도 겁도 많은 나는 VPN 앱을 켤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내내 불안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외국인 기숙사에 공안이 쳐들어와 유학생들을 몽땅 잡아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을 떨칠 수 없었다. 친구들은 이런 걱정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하니까 그냥 하면 돼.” 한국에선 그토록 싫던 이 말이, VPN 앱을 사용할 때만은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중국 앱 마켓에 VPN 앱이 버젓이 존재하는 것도 외국인인 내 눈에는 모순으로 보였다. “통제를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진짜 하지 말라는 것 맞아?” 칭다오의 한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중국 인구가 약 14억이야. 그중 VPN을 통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려는 중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정부로선 무시할 만한 수준의 숫자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 들은 다양한 해석 중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다. 중국인에겐 유튜브는 없지만 유쿠(优酷)가 있고, 구글은 없지만 바이두(百度)가 있고, 구글 맵은 없지만 가오더(高德) 맵이 있다. 만리장화벽 안에서 나고 자란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이 벽을 굳이 넘고 싶은 욕망이 없다.

언로 통제 덕에 중국 인터넷이 발전하는 아이러니

중국 친구는 말했다. “라인과 카카오톡이 중국에서 잘 안 되니까 유학생 가족들이 결국 위챗을 깔게 되잖아. 이로써 한국과 타이에 중국 메신저 사용 인구가 늘어나는 셈이지. 자, 중국 정부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겠어?” 만리장화벽이 언론 통제뿐만 아니라 자국 인터넷 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지난 11월 클라우드 업계 부동의 1위 AWS(아마존 웹서비스)가 수익성 높은 중국 사업을 일부 포기할 때도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압박을 이기지 못해 결국 철수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의 만리장화벽은 점점 높아져간다. VPN 앱 검열이 강화된다는 식의 소식도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하지만 중국 친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앞으로 중국에서 살기 더 갑갑해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유학생들에게 광저우에서 무역업을 하는 중국 친구가 시큰둥하게 한마디 했다. “유료 프로그램 사면 뚫려.” 타이완과 홍콩 친구들도 “두고 봐라. 대륙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 뚫어낼 것이다”라며 웃었다.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도가 일척 높아지면, 마가 일장 높아진다)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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