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시골 마을에서 체험학습을 하는 아이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가 곧 실시된다는 소식을 앞두고 큰누나와 다시 한번 심각하게 대화했다. 어지간하면 조카를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키우려고 했지만 다른 방향을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겠다는 것이 두 시간에 걸친 남매의 대화 내용이었다. 누나와 나의 이런 대화는 지난번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끝난 이후 부쩍 늘었다.

조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 공동육아를 하며 키웠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대안학교에 보낼 것인가, 공교육에 보낼 것인가를 두고 온 집안 식구가 모여 토론을 했지만 ‘유난’을 떨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신 나름 잘나가는 다국적기업에서 이사까지 했던 누나가 일을 그만두고 공동육아 멤버와 더불어 ‘방과 후 학교’를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조카가 들어간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성적이나 경쟁에 목매는 분이 아니어서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조카는 너무 평범한 아이다. 공부하기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했다. 아버지 얼굴을 그리고 그 특징을 이야기해보라는 학교 과제에 대해 “아버지의 죄는 놀아주지 않은 죄”이고 “벌은 평생 놀아줄 것”이라고 쓸 정도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시험지를 들고 쿵쾅쿵쾅 달려와서는 “다 맞았다”라고 자랑하지만 엄마가 “다 맞긴 뭐가 다 맞아, 뒷면은 다 틀렸잖아” 하면 “그러니까 앞면은 다 맞았다고!”라고 말할 정도로 낙천적인 아이다.

할아버지의 재력까지 필요한 사회

그러나 평범하다는 것에 ‘유감스럽다’는 말을 붙여야 할 만큼 ‘유감스러운’ 사회가 한국 사회다. 평범함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주목하는 아이들은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갈 수 있는 극소수 아이뿐이다. 물론 그들은 ‘극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아이다.

항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첫 번째가 어머니의 정보력이고, 두 번째가 아이의 공부에 대한 재능이고, 세 번째가 할아버지의 재력이란다. 아버지가 대기업 부장이라 하더라도 그 재력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 특목고에 가기 위해 더 필요한 해외 유학과 과외 등을 하려면 다른 돈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조카와 같이 ‘평범한 아이’가 가진 재능이나 관심에 대해서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조카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불, 바람, 쇠, 신화’ 따위에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본다. 아이는 〈붉은 돼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영화에 나오는 대장간 불빛에 황홀해하고, 무사의 쇠붙이와 갑옷의 번쩍거림에 정신을 잃는다. 학교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언어 재능’은 떨어지지만 색감이나 소리, 촉감에 매혹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인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내 조카 같은 아이가 지닌 ‘다른’ 감각이 지금 한국 학교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를 평범하게 키우려고 한 누나의 꿈은 이렇게 처참히 무너졌다. 누나는 회사를 그만둘 때만큼이나 전격적으로 회사로 돌아갔다. 조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해외 지사로 나가 아이와 한국을 ‘탈출’하기 위해서다. 방과 후 학교만으로 버티기에는 힘이 든단다. 교육감 선거가 끝난 뒤 갑자기 시험이 늘어날 조짐이 보이자 방과 후 학교에 참여하던 학부모들도 심리적으로 점점 더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아이들의 숨통을 틔우고, 다른 감각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능하던 공간이 이처럼 급속도로 사라져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몇몇 시민단체가 모여서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날 생태교육을 떠나기로 했다는 뉴스다. 그날 조카를 데리고 대장간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겠다. 그곳에서 불꽃과 쇠붙이 냄새, 바람의 촉감에 모처럼 아이가 흠뻑 젖도록 해야겠다.

기자명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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