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1 유자광은 궁궐을 지키는 무사, 즉 갑사(甲士)로 벼슬을 시작했어.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세조에게 참전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고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운 그는 정5품 병조정랑이라는 파격적인 출세를 한다. 왜 파격적이냐 하면 유자광은 서자였고 그 어머니는 관비로 지극히 미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이지.
이야기 1-2 해방 공간의 충청남도 부여로 시계를 돌려보자. 일제강점기 당시 면장을 지낸 집안의 7형제 중 다섯째 아들이 있었어. 형제 중 하나가 좌익 단체에 가담하면서 극우 테러 집단이었던 서북청년단이 그의 집을 습격하여 박살을 내고 사람들을 구타했지.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가세는 기울었어.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다섯째 아들은 막막한 상황에서 군대에 입대했지만 고참들의 횡포와 배고픔을 못 이겨 탈영을 하고 만단다. 그야말로 인생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기 직전, 주변의 도움으로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하게 됐고 장교가 돼. 그의 이름은 김종필이었어.
세조가 죽은 뒤 유자광이 새롭게 택한 생존 및 출세 방식은 ‘고발’이었어. 이시애의 난 때 자신과 함께 싸우기도 했던 남이가 역모를 꾀했다고 세조의 다음 왕인 예종에게 고발한 거야. 가뜩이나 남이를 별로 좋게 보지 않던 예종은 즉시로 남이를 잡아들여 죄를 묻지. 유자광은 남이의 정치적 위기를 정확히 짚어냈던 거지. 남이의 역모 증거로 제시된 것 중 하나는 남이가 지은 시였지. 야사에는 남이가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한다면(男兒二十未平國) 훗날 누가 나를 대장부라 하겠는가(後世誰稱大丈夫)”라고 노래한 적이 있는데 ‘未平國’이 ‘未得國’으로 둔갑해 있었단다. 즉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으로 시를 조작했던 것이지. 우리는 이런 걸 ‘공작정치’라고 부른단다. 유자광은 이런 잔꾀에도 능한 사람이었어.
이야기 2-2 김종필은 육군 정보국 북한반장 재임 시절, 한국전쟁의 발발을 전방으로부터 처음으로 보고받은 역사의 증인으로 남는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은 그 선배들에 비해 진급 등에서 불이익을 많이 봤고 김종필은 중령 시절 부패한 장성들을 고발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예편된 뒤 처삼촌 박정희 소장과 함께 쿠데타를 준비했어. 그들이 행동을 개시하여 정권을 장악한 게 바로 5·16 쿠데타였지. 쿠데타 이후 김종필이 한 일은 중앙정보부를 만드는 거였어. 이후 국가안전기획부, 오늘날의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공작정치의 산실은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어.
이야기 3-1 기본적으로 서자 출신에다가 무예로 한몫 보던 무관 출신, 수신제가보다는 권력의 향배에 더 민감했던 유자광을 콧대 높은 사림파, 즉 대의명분을 하늘같이 알던 유학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지. 그가 어떤 직위에 임명될 때마다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니되옵니다’를 연발하며 노골적으로 견제했어.
이야기 3-2 김종필은 권력의 핵심에 진입했고 앞서 말했듯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쿠데타 세력이 만든 당 의장을 지냈으며 국무총리까지 역임했어. 한·일 국교정상화에 앞장섰다가 매국노 이완용에 비견될 만큼 비난을 받았고,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그 심복들의 강력한 견제에 시달려야 했지. ‘자의 반 타의 반’ 정치를 그만두거나 외유에 나선 적도 많았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 정권을 강탈한 후배 군인들에게는 엄청난 모욕을 당한 끝에 정계 은퇴 각서까지 쓰게 됐단다. 그러나 그는 유자광처럼, 다시 살아나서 한국 정계의 한 축으로 1990년대를 보내게 돼. 급기야 1997년에는 평생 동안 그리 친밀하지 못했고 오히려 대척점에 서 있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잡고 정권 교체를 이뤄내는 변신을 일궈낸단다. 아마도 김종필은 대통령 자리 빼고 거의 모든 요직을 경험한 몇 안 되는 한국인이며 아울러 유자광처럼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그 역동적인 꿈틀거림을 지켜볼 수 있었던 사람일 거야.
우리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유자광은 그 흔한 문집 하나 남기지 않았어. 그래서 아빠는 아쉽다. 세조에서 중종까지라면 조선 왕조가 굳건하게 선 가운데, 속에서부터 곪기 시작하던 때였고 유자광은 그 과정을 핵심부에서 지켜본 희대의 목격자이자 증언자일 수 있었을 테니까. 반면 김종필 전 총리는 얼마 전 근사한 회고록을 남겼지. 아빠는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뭔가 아쉬웠는데 며칠 전 언론에 공개된 이분의 증언을 들으며 그 이유를 깨닫게 됐어.
그분은 회고록에서 결코 밝히지 않은 이야기 보따리들을 엄청나게 많이 갖고 계셨던 거야. “박근혜 대통령은 고집이 엄청나게 세서 5000만이 데모해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부모로부터 나쁜 것만 닮아서”를 들어. 우아한 학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의 반전 캐릭터를 ‘폭로’할 때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어. 그러면서 은근히 다음 정권에 어떤 이가 나서야 한다며 자신의 속에 ‘구렁이’가 들어 있음을 과시할 때, 또 “혁명(5·16 쿠데타)도 처음에 내가 하자고 했다”라며 어깨에 힘주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빠는 또 한 번 유자광 생각을 했단다.
그 속에 구렁이가 여러 마리 들어앉아 있었고 그렇게 느물느물 넘어가며, 때로는 누구를 감아 붙여 죽이거나 똬리 틀고 숨어가며 한생을 보냈던 경륜 있는 간신 유자광. 만약 언젠가 유자광이 김종필을 만나게 된다면 유자광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는 참 재미있는 삶을 살았소.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은 우리 손바닥 안에 있지 않았는가.” 아빠는 그 손바닥들을 곧게 펴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 뒤에 숨어 있을까 궁금하다. 대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자랐기에 저렇게 고집불통인가부터 시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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