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일까? 정의를 집행하는 일은 돈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일반적인 수준의 부가 아닌, 돈이 돈을 낳는 듯한, 다 쓸 수 없을 정도의 돈이라면 가능할까.

에바 라우싱과 한스 라우싱 부부는 영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에 속했다. 에바 라우싱도 백만장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지만 그녀의 남편 한스 라우싱은 테트라팩 창업주 루벤 라우싱의 손자였다. 테트라팩은 우유팩 등 식품 포장재를 최초로 상용화하고 대량 판매하는 데 성공한 다국적기업으로 여전히 창업주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한스 라우싱의 재산은 43억 파운드(약 6조원)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사람은 가족의 사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지독한 약물중독자였기 때문이다. 아내 에바 라우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마약중독 치료 시설에서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잠시 약을 멀리했지만 둘 다 다시 약물에 빠져들었다. 런던의 미국 대사관을 이용해서 마약을 밀수하려다가 잡힌 일도 있는데, 당시 부부는 관련 자선단체 두 군데에 재정적 후원을 하는 등 대외적으로는 마약 퇴치 운동가로 활동 중이었다. 이들의 결혼 생활도 매우 불안정했다. 남편은 그것이 아내의 약물중독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EPA경찰은 영국 런던 벨그라비아에 위치한, 970억원에 달하는 라우싱 부부의 저택(위)을 수색했다.

아내가 숨지고 2년 뒤 남편은 화려하게 재혼

2012년 7월9일, 경찰은 약에 취한 채로 운전을 하던 한스 라우싱의 차를 세웠다. 그가 운전하던 자동차 트렁크 안에는 수신인이 에바 라우싱인 미개봉 우편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수신인의 소재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남자는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내는 캘리포니아에 있다고 우겼다. 경찰은 침실 50개를 갖춘 7000만 파운드(약 970억원)에 달하는 그의 벨그라비아 저택을 수색했다. 입주 도우미 세 사람은 자신들에게는 부부 침실이 있는 3층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아내 에바 라우싱이 열이 난다며 한스 라우싱이 직접 식사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저택 3층은 온통 날아다니는 파리로 가득했다. 짙은 방향제 향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썩는 냄새가 났다. 침실 문은 가구와 절연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커다란 침대는 방수 천으로 덮여 있었고 그 위에는 50인치 텔레비전과 주사기를 비롯한 온갖 것들로 뒤덮여 쓰레기더미를 방불케 했다. 그 아래에서 무언가 썩고 있었다. 물건들을 뒤적거리던 경찰은 금발 머리카락이 붙은 사람 머리를 발견했다. 에바 라우싱이었다. 수십 겹의 시트며 옷가지로 뒤덮인 채였다. 그녀의 나이 48세였다.

 

 

 

ⓒAP Photo마약중독 치료 시설에서 만나 결혼한 라우싱 부부의 결혼 생활은 20년 만에 끝났다.

 

에바 라우싱의 시신은 너무 심하게 부패된 상태여서 손끝에 남아 있던 지문과 체내의 심장박동기(pacemaker)의 일련번호로 간신히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장박동기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심장이 뛴 것은 약 8주 전이었다. 시신은 주사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한스 라우싱은 아내가 쓰러져서 이불을 덮어준 거라고 했다. 이후 아내가 죽은 것을 알았지만 그 죽음에 직면할 자신이 없었고, 아내가 없는 인생을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노라고, 아내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진술을 하는 데 변호인의 검토와 조력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그는 늘 최고로 유명한 변호사 군단에 둘러싸여 나타났는데 그중 대장 격은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의 형이었다.

경찰은 한스 라우싱을 에바 라우싱의 살인범으로 기소하려고 잠시 고려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시신이 이불과 옷가지 더미 아래에서 부패할 때 증거도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사망 원인은 코카인 중독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에바 라우싱이 어떻게 코카인을 과용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스 라우싱 주장대로 죽은 이의 부주의 탓일 수도 있다. 또는 누군가가 아내를 죽였고 남편은 이를 목격했거나 방조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한스 라우싱이 죽였을 수도 있다. 대개 가장 이해관계가 깊은 사람이 범인이 아니던가.

2012년 8월1일, 한스 라우싱은 단지 장례방해죄로 기소되어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달 말, 영국 및 스웨덴 경찰은 에바 라우싱이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 암살 사건의 전모를 안다며 그해 초에 스웨덴 언론을 접촉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암살당하기까지 10년 동안 스웨덴 총리를 지낸 팔메는 1986년 2월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에바 라우싱은 팔메의 죽음에 스웨덴 기업인이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자신이 갑작스럽게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채 오기 전에 에바 라우싱은 죽음을 맞았다.

에바 라우싱의 시신이 발견되고 2년 지난 2014년 7월, 한스 라우싱은 화려하게 재혼했다. 새 아내는 미술품 경매회사로 유명한 크리스티의 예술품 전문가였다. 오랫동안 알아온 두 사람은 에바 라우싱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최근 한스 라우싱의 누나이자 유명한 자선사업가인 시그리드 라우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본인 및 가족이 동생의 약물중독 때문에 겪은 고난을 털어놓은 바 있다. 많은 돈도, 세계 최고의 약물중독 치료 전문가도 동생을 구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근래 사진으로 보는 한스 라우싱은 연상의 새 아내와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예전 아내와 함께하던 시절의 추레하고 해골과도 같던 모습에 비하면 꽤나 안정된 듯하다.

드디어 한스 라우싱은 행복해진 것일까. 그 행복은 아내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죽음과 관련한 가벼운 형벌은 엄청난 돈으로 산 것일까. 그렇다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죽은 자 에바 라우싱과 그녀의 옆에 있었던 한스 라우싱만이 알 것이다.

 

기자명 런던·김세정 (영국 GRM Law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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