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운 노동운동가 전태일. 한 청년의 희생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환경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런데 1970년 대한민국의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의 모습은 어쩐지 오늘날의 한 프랑스 청년과 많이 닮았다.

프랑스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던 청년 아다마 트라오르의 죽음이 그것이다. 지난 7월 아다마는 파리 동쪽에 위치한 르발두아즈에서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던 중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다. 전태일의 분신자살 이후 시위가 일어났던 것처럼, 프랑스 청년들은 ‘아다마를 위한 정의’라 쓰인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 전역에 퍼지고 있던 노동법 개정안 반대 시위에 청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청년들에게 노동법은 어떤 의미일까?

ⓒAFP7월26일 프랑스 청년들이 ‘아다마를 위한 정의’라 쓰인 피켓을 들고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먼저 프랑스 사회에서 노동법 개정이 문제가 된 원인부터 주목해보자.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은 기업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경영상의 어려움에 따른 해고를 용이하게 했고, 사실상 추가 노동시간은 확대되는데 그에 상응하는 임금은 감소될 수 있는, 노동자에게는 불리한 개정안이었다(〈시사IN〉 제456호 ‘프랑스도 한국처럼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사 참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봄 노동법 개정안 통과에 강력한 의지를 비쳤다.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물러설 생각이 없다.” 발표되자마자 국민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공화당 소속) 시절 자신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노동법 개정안을 사회당은 집권 여당이 된 후 실업률 감소를 명목으로 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업률을 낮추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당의 모습이 뻔히 보였기에 노동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물결이 일었다. 전국 곳곳에서 노동법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다. 경찰도 최루탄 사용 등 강도 높은 진압에 나섰다. 해마다 합법적으로 각종 시위가 벌어지는 나라에서 공격적인 공권력 대응은 프랑스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시민과 노동자들이 반대하는데도 노동법 개정안이 지난 7월 가결됐다. 가결 과정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는 합법적이긴 했지만 ‘민주적’이지는 못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좌파와 우파가 노동법 개정안에 합의하지 못함에 따라 헌법 제49조 3항의 긴급명령권을 근거로 노동법 개정안을 무표결 통과시켰다”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헌법 제49조 3항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법안을 공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월에도 헌법 제49조 3항을 이용해 노동법 개정안을 하원 표결 없이 상원에 넘겼다. 상원은 노동법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 하원으로 내려보냈는데, 하원에서 합의를 하지 못하자 정부가 긴급명령권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생들, “모두가 경찰을 혐오한다”

그렇다면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25세 이하 청년들이 노동법 개정안에 적극 반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 통계청 INSEE는 지난 8월18일 실업률이 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인 CDD(일종의 인턴)로 일하는 청년들이 늘었다는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즉, 비정규직의 수만 늘어난 것과 다름없기에 고용 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실업률이 다시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 처지에선 불안정해지는 미래를 택할 수 없었다. 정부는 당장의 실업률 감소에 눈이 먼 고용정책만 내놓고 있다. 나아가 친기업 노동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청년 세대가 노동법 개정안에 반발하는 이유다. 청년 아다마의 이야기가 전해지자 노동법 개정안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가 더욱더 강해졌다.

ⓒEPA7월5일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가 노동법 개정안을 하원 표결 없이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22일 ‘리세 볼테르’라는 공립 고등학교에서는 학생 100여 명이 학교 문을 막고 노동법 개정 반대와 함께 “모두가 경찰을 혐오한다”라는 말을 써 붙이며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기도 했다. 경찰한테 플래시볼(공의 형태로 된 총)을 맞아 시위를 하던 중 눈을 다쳤다는 학생의 제보도 잇따랐다. 15~23세 청년들의 독립 투쟁단체 MILI 소속 50여 명은 앞장서서 폭력 시위를 하며 ‘권위적인’ 정부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폭력적 행위도 서슴지 않으면서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누구든 현 정부의 의견에 반대를 표명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청년 아다마는 시위 현장과 뉴스에서만 등장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랩 가수 블랙 엠이 아다마의 죽음을 추모하며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아다마를 위한 정의. 정의가 없다면 평화도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쓰인 티셔츠를 입고 출연했다. 프랑스 텔레비전 채널 중 하나인 ‘W9’가 블랙 엠의 뮤직비디오를 내보내며 티셔츠 속의 해당 문장을 흐릿하게 지웠다. 이 모습은 삽시간에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갔다. 채널 W9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자, W9는 “아직 정확한 아다마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가린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숨진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아다마의 죽음을 둘러싼 경찰과 증인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은 맞다. 경찰은 연행하던 도중 복통을 호소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경찰 폭행을 의심한다. 유가족이 부검을 요청했고, 검찰은 마비 증상이 사인이며 숨진 아다마가 대마초를 12시간 이내에 피웠다고 발표했다. 유가족 측 변호사는 마약이나 병으로 인한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나중에 검찰 측 발표가 번복되었다. 법의학 전문가 두 명이 두 차례에 걸쳐 부검을 했다. 한 명은 대마초 성분을 발견했다고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아다마의 토사물을 기준으로 살펴보았는데 약물 복용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두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결론 내린 사인은 ‘산소 부족’, 질식에 따른 마비 증상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처음에 질식사를 언급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경찰 해명과 달리 한 소방관은 아다마를 발견했을 때 양손이 등 뒤로 수갑 채워진 채 바닥에 배를 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아다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산소 부족의 원인이 경찰 폭행이나 체포 과정에서의 압박 때문인지, 아니면 심장병 때문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벌어지면서, 스물네 살 청년 아다마가 ‘왜 그렇게까지 노동법 개정안을 반대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가려지고 있다. 신문 지면에는 새로 시행될 개정 노동법에 관한 설명만 가득하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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