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무더위는 숫자가 말해준다. 8월1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최고기온이 33℃ 아래였던 날은 단 이틀이었다. 33℃는 기상청이 발령하는 폭염주의보 경보 기준 온도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5월23일부터 8월9일까지 1290명이 온열 질환(일사병·열사병 따위 열에 따른 병) 증상을 보였고, 10명은 죽었다. 2011년부터 지난 8월8일까지 온열 질환 사망자 수는 총 57명이다.

그런데 이 수치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002년부터 기후변화 문제를 연구해온 장재연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실제 폭염 피해자는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폭염은 온열 질환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장 교수에게 ‘폭염 독해법’을 물었다.

 

ⓒ시사IN 이상원 장재연 교수는 “한반도의 여름은 앞으로 점점 더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교수가 어떻게 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하게 되었나?

1980년대에 연세대 의대 환경공해연구소에서 일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졌다. 기후변화 문제는 2002년부터 다뤘다. 환경부에서 ‘기후변화가 건강에 주는 영향’을 주제로 연구용역을 맡겨서다. 국내에서 기후변화와 건강을 엮은 연구로는 이 보고서가 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 연구에서 이상 고온 현상에 대해 어떻게 결론 내렸나?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시작되겠지만 아직은 아닐 것이다’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예측이 빗나갔다. 한반도에서 이상 고온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1994년의 기록적 폭염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1993년이나 1995년에 비해 1994년 여름의 평균 일 최고기온이 유독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길게 보면 1994년 데이터만 튀는 것은 아니었다. 여름 평균 최고기온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꾸준히 올랐다. 이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마 한반도의 여름은 앞으로도 점점 더워질 것이다.

폭염 빈도가 늘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영향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그 가운데 일부만 파악하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온열 질환 발생은 기본이고, 심혈관·호흡기 질환을 급격히 악화시킨다. 모기 개체수가 늘어 전염병이 더 확산되기도 한다. 천식이나 꽃가루 알레르기도 증가한다.

폭염이 심장이나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키는 원리는 무엇인가?

사람은 정온동물이다. 체온이 1~2℃만 올라가도 체내 효소 따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열이 많이 들어오면 몸을 식히려 한다. 심장은 피를 빨리, 많이 순환시켜 몸을 식힌다. 이 과정에서 호흡도 가빠진다. 심혈관·호흡기에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신체에 무리가 가는 것이다.

어떤 병을 가진 사람들이 더 주의해야 하는지 알아낼 방법이 있나?

매해 여름 사망 원인에 따른 사망자 통계를 놓고 그 수를 견주어보면 된다. 가령 암 사망자 수는 여름 최고기온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한 심혈관·호흡기 질환 사망자 수는 폭염 빈도와 강도에 비례하는 편이다. 정신 질환 환자도 고온인 해에 더 많이 죽는다.

정신 질환에도 영향을 주나?

그렇다. 위기 상황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더 위험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젊을수록 외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폭염을 피하려 하는 반면, 노인들은 반응이 늦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에도 노인들은 잘 피하지 않고 계속 야외 활동을 한다. 지자체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야외 활동을 계속한다. 더위를 참는 게 아니라 본인 체온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폭염에 65세 이상 노인들이 더 위험한 것은 젊은이에 비해 노인들이 외부 온도에 둔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폭염으로 2011년부터 6년 동안 57명이 죽었다. 피해 현황이 광범위한 데에 비해 사망자 수는 적은 것 아닌가?

그게 문제의 핵심이다. 사망자 57명은 온열 질환만 따진 것이다. 매해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는 폭염 사망자 평균 10명 남짓은, 열사병이나 일사병으로 죽은 사람만 집계한 수치다. 폭염으로 기존 질환이 악화되거나 새로 발병하는 경우, 그 사망자는 ‘폭염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는다. 가령 사망 원인이 호흡기 질환이지만, 폭염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망자들은 온열 질환 사망자로 기록된 수보다 훨씬 많다. 이렇게 셌을 때, 지난 100년 동안 모든 기상재해(태풍·대설·폭염 등) 가운데 가장 사망자를 많이 낸 재해가 폭염이다. 이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집계 방식이 상식에 가깝다.

그럼 폭염의 간접 희생자들을 집계할 방법이 있나?

폭염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는 다양하며, 전부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름철 사망자 수를 모두 집계해 비교하는 방식을 쓴다. 매해 7~8월 사망자 수를 분석했을 때 일반적으로 100명 안팎이 죽는다면, 폭염이 심한 해에는 130명쯤 죽는다. 이 30명을 ‘초과 사망자’라고 부른다. 이 원리는 1994년처럼 예외적으로 더운 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예년이라 볼 수 있는 해에도 사망자 수는 기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여름 최고 평균기온 1℃가 높아지면 그만큼 더 죽고, 1℃ 낮아지면 덜 죽는다. 심지어 매일 사망자 수에도 미묘한 기온 차이가 영향을 미친다. 어제보다 오늘이 덥다면 그만큼 사망자가 는다. 여러 연구에서 검증된 결과다.

초과 사망자 수를 정부가 집계하고 있나?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온열 질환자와 그 사망자만 집계하며, 그마저 전수는 아니다. 2003년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7만명이 넘게 죽었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매일 초과 사망자 수를 집계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폭염 대책의 결과를 바로 알 수 있고, 올바른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폭염이 심해서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더웠지만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피해가 덜했다’가 돼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현행 집계 방식은 보건 통계로서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본다. 돼지 폐사는 집계하면서 왜 인명 손실은 세지 않나?

폭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망자를 집계하면 대응 정책도 바뀌게 되나?

그렇다. 온열 질환은 태양에 직접 노출돼 생기는 게 대부분이다. 이 수치만 줄이려다 보니 “야외 활동 삼가세요”라는 소리만 하게 된다. 그런데 심혈관·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실내에서도 위험하다. 게다가 온열 질환 사망자와 간접적 폭염 사망자들은 사망률이 급격히 올라가는 온도가 다르다. 대응 방법도 차이가 생긴다. 결론적으로, 온열 질환 사망자 수만 체크해서는 ‘오늘 날씨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평가하기 어렵다.

향후 폭염 사망자는 더 늘어날까?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감축하느냐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아마 늘 것이다. 이중의 이유가 있다. 폭염 발생 빈도와 강도는 증가하고, 여기에 취약한 노령인구 비율은 높아진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2003년 유럽처럼 폭염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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