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저녁 퇴근길, 김상민씨(가명·41)는 서울 개봉역 인근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로 향했다. 시민단체 사무실에는 김씨와 비슷한 처지인 8명이 모였다. 지난 4월22일 3300여 명으로부터 585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관계자 4명이 구속된 일명 ‘백테크 사건’ 피해자들이다. 사무실에 모인 이들은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억9000만원의 피해를 보았다. 이들은 사건 이후 대책회의를 해왔다. 7월26일 이들은 서울 북부지검에 고소장(사기 혐의 등)을 제출했다. 피고소인은 온라인 음원 포털 소리바다의 공동대표 박성미씨다. 유사수신 피해자들이 갑자기 왜 대표적인 음원 사이트 소리바다의 대표를 고소한 것일까.

회사원 김씨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백만장자의 재테크(백테크)’라는 광고를 보았다. 검색해보니 블로그·카페·밴드 등에 관련 정보가 많았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서울 강남의 백테크 사무실을 방문했다. 백테크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설립한 법인이 부동산·신기술 개발 사업 등 특정 프로젝트에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들이 프로젝트별로 단기간 수익률을 보장하는 사모펀드를 모집한다고 말했다. 또한 케이블 채널 RTN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 〈백만장자 머니쇼〉 〈7인의 뇌색남〉을 소개하며 백테크 관계자들이 출연한다고 홍보했다. 김씨는 “유명 아나운서와 방송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신뢰가 생겼다”라고 말한다. 김씨는 4개 종목에 1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백테크의 수석팀장 등은 사모펀드라며 돈을 모아 가로챘다.

“방송에도 나왔는데…”라며 안심하던 김씨의 신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11월 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백테크는 2015년 5월부터 유사수신을 해왔는데, 초기에는 ‘투자금 돌려막기’식으로 수익금을 지급했다. 그러다가 수익금 지급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결국 지난 4월 백테크의 실질적인 대표인 팽 아무개씨 등 4명이 구속되고 14명(5개 법인 포함)이 불구속 기소되었다.

유사수신 피해자들은 백테크 관련 회사의 내부자료 등을 수집했다. 유사수신을 주도했던 이들은 구속되었지만 이들이 모은 돈 수백억원은 공중에 떠버렸기 때문이다. 피해 자금 회수를 위해 투자했다는 업체를 찾아가보기도 했다. 허사였다. 어떤 업체는 주소로 찾아가니 빈 사무실이었고, 또 다른 업체는 원룸 건물이었다.

‘영상 제작만 한 것일까’ 의심하는 피해자들

피해자들은 백테크, 글로벌인베스트컴퍼니, 더일류, 더마니 등 유사수신 법인의 통장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더일류 통장에서 2015년 8월20일부터 2015년 11월17일까지 14차례에 걸쳐 18억3000만원이 DK미디어라는 회사로 송금된 것을 확인했다. 이 거래 내역을 보고 의구심이 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시 DK미디어 회사의 대표가 박성미씨였는데, 앞서 말한 〈백만장자 머니쇼〉 〈7인의 뇌색남〉 기획·제작사가 바로 DK미디어였다. 게다가 박씨는 2015년 9월1일 백테크의 투자설명회에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2016년 1월 말까지 박성미 대표와 팽 아무개씨 사이에 ‘피투피펀딩’ 사이트 구성안이 오가기도 했다. 그 사이트 기획안에는 백테크에서 투자한다는 프로젝트들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이런 내용을 보고 백테크 피해자들은 박성미 대표가 영상물 외주 제작에 그치지 않고 백테크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사기 등 혐의로 고소하게 된 것이다.

백테크 팀장들이 출연한 TV 프로그램 <7인의 뇌색남> 예고편.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지난해 말 박 대표가 지인과 나눈 대화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 이 대화에서 박 대표는 “내가 백테크가 유사수신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겠어? 내가 바보냐? 우리는 외주 제작 계약해서 안에 들어가보는 게 중요한 거야. 우리가 프로그램 계약을 안 했으면 저 안의 ‘소스’를 몰라”라고 말했다.

지난 4월20일 박성미 대표는 코스닥 등록사 소리바다의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앞서 박 대표는 1월12일에 피투피펀딩을 설립했고, 이 회사가 소리바다의 주식 4.27%를 갖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블루인베스트와 피투피펀딩이 소리바다의 지분을 각각 5.08%, 4.27%를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의 자본금 2억원과 5억100만원은 100% 박성미 대표가 소유한 것으로 공시되어 있다. 법인등기부상 블루인베스트의 김 아무개 대표의 주소는 박성미 대표의 집 주소와 같다.

박성미 소리바다 대표는 백테크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이런 의혹을 부인했다. 박 대표는 “더일류에서 입금된 돈은 방송 제작비, 인수 계약금, 방송장비 구입 대행비 등이다. 게다가 방송 제작비 4억원을 받지 못했다. 나도 백테크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나도 ‘백테크’ 피해자다”라는데… 

 

박성미 대표(전 DK미디어 대표·현 소리바다 공동대표·피투피펀딩 대표)에게 백테크 관련 의혹에 대해 직접 물었다. 그와의 문답을 요약해 정리했다.

최근 백테크 피해자들이 고소했다.
나도 ‘백테크’ 피해자다. 나는 방송 제작 의뢰가 와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뿐이다. 백테크에서 돈을 준 것은 프로그램 제작비다.

백테크 관련 법인인 더일류에서 DK미디어에 총 18억3000여만 원을 입금했는데?
처음에 40편 제작을 계약했다. 나중에 제작 편수가 줄었다. 회당 제작단가는 7000만~8000만원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 제작비가 많이 든다. 처음 견적이 회당 1억4000만원이었는데, 절반으로 깎아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일부 제작비 4억원을 못 받았다. 원래 팽 대표(구속)가 30억원에 DK미디어를 인수하기로 했다. 그 계약금으로 3억원을 받았고, 나머지 27억원은 못 받았다(이런 해명은 박성미 대표가 백테크 관계자에게 보낸 용역계약서 초안, 박 대표 지인과 나눈 대화 녹음 내용과 차이가 있다. 이 자료에는 프로그램 제작비가 회당 3000만원 선으로 되어 있다. 기자가 입수한 녹음 파일에서 박 대표는 팽 대표한테 투자받기로 한 액수가 15억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9월1일 백테크 투자설명회에 강사로 나섰다.
그건 RTN(케이블 채널)에서 미디어 산업에 대한 특강을 해달라고 해서 간 거다.

구속된 팽 아무개씨와 피투피펀딩 웹페이지 구성안을 논의한 메일 기록이 있다. 또 그 구성안을 보면 백테크의 종목이 예시로 들어가 있던데.
그건 상품 예시만 된 거다. 피투피가 프로젝트를 얹어놓고 투자를 받는 거니까. 팽씨가 피투피펀딩에 해박한 것 같았다. 투자자가 많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1월인가 2월쯤에 백테크 쪽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거래를 끊었다.

유사수신일 거라는 의심은 안 했나?
지난해 9월, 10월에 제작비가 계약서대로 안 들어오고 500만원, 1000만원 찔끔찔끔 입금되길래 돈의 흐름 등에 대해 의심은 했다. 또 백테크 팀장들(7명)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14회 입금 내역을 보면, 입금 액수는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3억원이었다).

소리바다 대표는 어떻게 맡게 되었나?
지금 소리바다에 월급 사장으로 와 있다. 아는 선배가 자신의 상장사 대주주 주식을 담보로 투자를 했다. (소리바다의 주식을 갖고 있는) 피투피펀딩과 블루인베스트의 자본금(5억원과 2억원)도 거의 그 선배의 것이다. 회계장부상 문제인데 주주명부 정리를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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