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토요일 저녁 7시, 서울 KBS 아레나홀에서 어느 솔로 가수의 단독 콘서트가 있었다. 이 솔로 가수는 1집밖에 내지 않았다. 콘서트에서 그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1집에 수록된 단 8곡뿐이었다. 그럼에도 2시간의 러닝타임을 충분히 활용했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OST를 앙코르곡으로 불렀다. 3000석을 가득 메운 아레나홀에서 그의 첫 콘서트가 매우 특이했던 점은, 그가 국내 가수가 아닌, 거기다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그렇다고 해서 영어로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닌), 중화인민공화국 출신(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상하이 출신)의 ‘쉬웨이저우(허위주 혹은 티미 수·Timmy Xu)’였기 때문이다.

ⓒ유튜브 갈무리

 

중국 배우들의 한국 진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류더화(유덕화)나 저우룬파(주윤발)는 한국에서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구가했고, 이는 타이완 영화 〈나의 소녀시대〉에서 여주인공의 류더화에 대한 열망을 국내 관객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저우싱츠(주성치)는 국내에서 꽤나 오래되고 깊은 팬덤을 자랑한다. 이뿐인가. 한국에 수입되어 더빙되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비록 원본이 일본 만화였다는 점에서 또 다른 팬덤 형성의 요인을 갖지만, 그 중심에는 옌청쉬(언승욱)와 저우위민(주유민)이 있었다(물론 그들은 타이완 배우들이다. 그 당시 타이완과 중국 배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1980년대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중국 대하드라마 〈황제의 딸〉은 ‘자오웨이(조미)’라는 중국 배우의 이름을 국내에 알렸으며, 현재는 훠젠화(곽건화)와 결혼설이 돌고 있는 린신루(임심여)를 비롯해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 판빙빙(범빙빙)의 초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 시대 중국 배우의 국내 팬질 혹은 덕질은 한계가 있었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역시 언어였다. 국내 ‘오빠’들의 정보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없는데, 중국 배우들의 사생활이나 연예계 생태계를 알 리 만무했다. 가끔 영화가 개봉하면 보러 가거나 국내에 수입된 드라마를 통해 근황을 알 수 있을 뿐. 실은 그 근황도 최근의 것이 아니라 한참 오래전 것이기도 했다. 대체 옌청쉬는 뭘 먹고 살고 있으며, 자오웨이는 무슨 영화 촬영에 들어갔는지, 이 언니·오빠들이 뭘 하고 사는지 한국 팬들이 알 방도가 없었다. 서울 명동에 있는 중화서국에서 언니·오빠의 잡지와 사진을 팔았으나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한자요, 내 머릿속은 번뇌이니 이를 해석하려면 적어도 중국 유학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실제 필자의 지인은 궈푸청(곽부성)을 너무나도 사랑해 일찍이 중국 유학을 떠났으나 한참 후에야 홍콩 사람들이 만다린어가 아닌 광둥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입술을 깨물었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시·공간 초월 덕질 가능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우리 언니·오빠의 정보를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실시간(이라 말하고 24시간)으로 제공받기 때문이다. 모바일의 GPS 기능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활용은 팬들로 하여금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일상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쉬웨이저우가 국내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상은〉이라는 웹 드라마 때문인데, 웹 드라마의 플랫폼 특성상 콘텐츠의 확산이 매우 광범위하게(아시아 전역뿐만 아니라 서구에 이르기까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상은〉이라는 드라마의 경우 이전에 비해 근소한 시간차를 두고 국내의 중잘알(중국어를 잘 아는 사람) 능력자들이 자막을 제작함으로써 거의 실시간으로 한·중 동시 방영이 가능했고, 이를 수용한 국내 팬덤은 점차 그 화력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빠의 꽃길을 만들어줄게

이는 국내 팬덤이 직접 웨이보와 위챗을 사용함으로써 중국 팬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팬덤으로 영입하는 등의 다양한 네트워크 형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위챗과 큐큐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잘 알려진 중국의 텐센트는 ‘텐센트 라이브’라는 실시간 공연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덕분에 국내의 많은 팬들은 쉬웨이저우의 첫 앨범 쇼케이스를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몸은 한국에 있지만 덕질은 중국 베이징을 오갈 수 있는, 내가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가가 물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그야말로 ‘시·공간 초월 덕질의 사회’에 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환경이 팬들에게만 놀라움의 감정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쉬웨이저우는 국내 콘서트를 통해 한국 지하철 광고판에 자신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보고 처음에는 ‘합성’인 줄 알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스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적 불문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한국의 어느 곳에서 185㎝의 큰 키에 수줍음이 많은, 데스메탈을 좋아하고 라틴댄스를 매끈하게 출 줄 아는, 1994년에 태어난 한 상하이 남자를 웹 드라마를 통해 만났다. 이는 스타도 팬덤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다 하더라도, “잘생긴 게 가장 큰 재미다”라는 말이 이해되는 그의 실루엣을 보고 있으면 자국 팬도 아닌, 해외 팬인 우리가 오빠의 꽃길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덕질은 현재 국경을 희미하게 만드는 중이다. 우리는 오빠를 언제든 소환해낼 수 있으며 나 또한 오빠의 곁으로 소환될 수 있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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