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당시 유성기업의 노동조합 파괴에 원청 업체인 현대자동차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추가로 공개되었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의 주요 협력업체로, 노조 파괴 공작 의혹이 일었던 곳이다.

지난 6월28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이 공개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의 2012년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검찰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당시 압수수색을 통해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문제에 대해 현대차와 협의한 증거를 찾아냈다.

이번에 공개된 수사보고서(2012년 11월30일자) 전문은 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2012년 11월14일 유성기업 아산공장·영동공장·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문건’에 대한 분석(22건), 당시 유성기업의 전표철, 대전고검 디지털 수사팀에서 확보한 유성기업 관계자의 컴퓨터 자료(문서파일 및 이메일) 등이다.

이 보고서에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당시 압수물에 대해 수차례 “(문건·자료 등이)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유성기업 송 아무개 과장은 2011년 8월8일부터 2012년 3월28일까지 ‘관찰일지’ 129장을 작성했다. 압수수색을 통해 이 문건을 확보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송 과장의 당시 기록에 대해 “관찰일지가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운영하는 것에 지배 또는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음”이라고 평가했다.

ⓒ시사IN 이명익5월26일,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원청 업체인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조 파괴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였다.

유성기업 서울사무소에서 압수한 ‘2011. 10.8. 유성노조 가입 확대전략’ 문서도 마찬가지다. 수사보고서는 이 문건에 대해서도 “징계 및 인사고과 등을 부당노동행위 수단으로 활용하였음을 명시하고 있는” 문건이며 “(해당 문건은) 부당노동행위 증거자료로 명백히 확인됨”이라고 기록했다.

이 밖에 당시 노조와의 대립 국면에서 현대차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난 정황이 ‘전표철(지출 내역)’을 통해 드러났고, 노조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현대차에 보고한 정황도 이메일 압수물에 남아 있다. 이 기록물에 따르면 유성기업은 당시 현대차 관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유성노조(제2노조) 가입 확대전략’ ‘유성기업 조직 안정화 방안’ 등을 문서로 만들어 보고했다. 유성기업 사태의 핵심에 현대차가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4년 전 수사 기록이지만, 이 자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유성기업 노조 파괴’ 사태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유성기업에서 핵심 부품이 조달되지 않을 경우, 현대차 공장의 완성차 생산 라인이 영향을 받는 구조다. 노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노조 파괴로 이름난 ‘창조컨설팅’의 도움을 받아 조직적인 노조 와해를 펼쳤다는 것이 당시 의혹의 핵심이었다.

시작은 2011년 5월18일에 진행된 직장 폐쇄다. 그해 7월1일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7월15일 회사 측이 지원하는 ‘제2노조(유성노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유성지회’에 대한 노조 와해 공작이 시작되었다. 그 배후로 노동조합 파괴로 악명이 높은 ‘창조컨설팅’이 드러나면서 이듬해 국회 청문회까지 열리는 등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공인노무사법 위반 혐의로 창조컨설팅 심종두 대표의 노무사 등록을 취소했다(최근 심 대표는 새 노무법인을 열고 다시 활동하고 있다). 또 검찰과 고용노동부가 유성기업을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이번에 공개된 ‘수사보고서’가 작성된 것이다.

관련 소송만 70건 넘게 진행 중

그러나 이 같은 증거에도 검찰은 2013년 12월30일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와 현대차 관계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이 당시 수사를 은폐·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결국 2014년 12월 노조가 낸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2015년 검찰은 유성기업 관계자들만 기소했다. 이번에도 검찰은 노조 파괴 과정의 핵심 관계자인 현대차 직원들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기소된 나머지 피의자에 대한 재판 역시 1년 넘게 이어지며 아직 1심 판결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검찰이 ‘압수수색→불기소→재정신청 인용→일부 기소’로 시간을 끌어온 ‘노조 파괴’ 고소·고발 건은 이번 자료 공개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금속노조는 지난 2월 ‘천안지청 수사보고서’를 바탕으로 현대차 8명, 유성기업 14명, 창조컨설팅 4명을 검찰에 추가 고소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관계자들도 고소했다. 법률 대리를 맡은 김상은 변호사는 “사태 초기(2011년) 처음 고소할 때는 구체적으로 현대차가 무엇을 했는지, 유성기업과 어떻게 노조 파괴에 대해 협의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수사보고서’를 확보하면서 구체적으로 현대차가 어떻게 (유성기업 노조 파괴에) 개입했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번에는 현대차 관계자에 대한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고소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사실상 이번 법적 분쟁을 새로운 출발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공방이 5년 넘게 이어지면서 300여 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 조합원 개인에 대한 각종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지난 3월17일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일했던 한광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보다 노조원 개개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수십 건에 걸쳐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이다. 소송만 70건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경찰·검찰 조사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조합원 개인에게는 큰 고통이 되고 있다. 노조원에 대한 소송 절차는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노조가 추가로 낸 고소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접수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유성기업 노조 파괴 관련 주요 사건 일지
2011. 5.18 유성기업 직장 폐쇄
2011. 7.15 복수노조 시행으로 회사 측 주도 제2노조 설립
2012. 9. 국회 청문회 개최. 창조컨설팅 노조 파괴 문건 폭로
2012. 11.14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 유성기업 압수수색
2013. 12.30 검찰,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 현대차 정몽구 회장 불기소 처분
2014. 6.13 금속노조, 검찰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
2014. 12.31 대전고등법원, 검찰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 인용
2016. 1.28 민주노총과 은수미 의원, 2012년 당시 압수수색 수사결과 일부 공개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의 노조 대응에 관여한 사실 포함
2016. 2.4 현대차 8명, 유성기업 14명, 창조컨설팅 4명에 대해 고소
2016. 4.14 법원, 회사 측이 주도한 제2노조에 대해 노조무효 판결
2016. 4.19 무효 판결 받은 제2노조 임원단, 제3노조 설립 신고
2016. 5.10 유성 범대위, 정몽구 회장 외 7명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위반 고발
2016. 6.29 이정미 의원, 2012년 당시 압수수색 수사결과 추가 공개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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