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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전화에 ‘약발’ 받은 KBS


30년 만에 다시 등장한 ‘보도지침’

 

 

기자회견에서 KBS노조 관계자는 긴 말 없이 음성파일부터 재생했다. ‘목소리’가 나오자 취재 기자들은 웃었다. 워낙 빠르고 격앙된 어조인 데다, 혼비백산한 모양새여서다. 통화 상대방은 이따금 무언가 항의하려 했다. 목소리 주인공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상대방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었다. 6월30일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단체들은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지침’ 통화를 폭로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구조·수색이 한창이던 2014년 4월, 청와대 홍보수석은 KBS 국장에게 전화로 ‘보도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재생된 녹음파일은 두 건이다. 2014년 4월21일과 4월30일 통화 녹취가 공개됐다. 4월21일 통화에서 이 전 수석은 “9시 뉴스에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보도를) 내고 있다”라고 항의했다. “그놈들(선장과 선원들) 잘못이지 (중략)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해경을 그런 식으로 (보도한다)”라고 말했다. 김시곤 전 국장이 해경의 문제를 지적하자 “내가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따졌다.

4월30일에는 더 노골적으로 보도 수정을 요구해왔다. 이 전 홍보수석은 4월30일 밤 10시쯤 전화를 걸어 ‘수색 현장에서 해경이 해군 투입을 통제했다’는 보도를 문제 삼았다. 해당 보도를 〈뉴스라인〉에서는 “아예 다른 걸로 대체를 해주든지 아니면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 번만 더 녹음을 해주시오”라고 요구했다. 이 전 수석은 “하필이면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라며 “살려주시오”라고도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왼쪽)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오른쪽)에게 “살려주시오”라고도 말했다.

처음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김 전 국장은 2014년 5월16일 KBS기자협회 총회에서도 ‘청와대 외압’을 주장한 바 있다. 구체적 내용과 주체도 밝혔다. 그는 “해경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라는 요구를 청와대에서 받았다고 말했고, 해당 관계자가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하지만 2년 뒤인 6월30일, 공영방송 보도국장을 협박하고 구슬리는 청와대 수석의 육성을 실제로 듣고 기자회견장은 술렁였다.

김시곤 전 국장의 대응에도 의문이 남았다. 2014년 4월21일 “지금은 좀 봐달라”는 이정현 전 수석에게 김 전 국장은 “아니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4월30일 〈뉴스라인〉 보도 수정 요구에 대해서는 “〈뉴스라인〉 쪽에 내가 한번 얘기를 해볼게요” “하여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게요 내가”라고 답했다.

흥분한 정부 관계자를 향한 립서비스였을까? 김 전 국장은 2014년 청와대 외압을 주장하면서 “밖(청와대)에서 연락이 오더라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가장 비판적인 게 KBS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외압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보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전화는 ‘효과’가 있었다. 〈시사IN〉은 2014년 4월16일부터 5월1일까지 KBS 〈뉴스9〉와 〈뉴스라인〉 세월호 관련 보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4월21일과 4월30일 두 차례 통화 전후로 KBS 뉴스 보도 방향이 변했다. 4월16일부터 21일까지 6일 동안 〈뉴스9〉는 해경과 구조본부, 정부 비판에 23꼭지를 할애했다. 대부분 꼭지가 ‘현재 수색 현황’을 보도했던 사건 초기임을 감안하면 그 수가 적지 않다. 16일 1개, 17일 2개로 점점 늘어난 정부·해경 비판 보도는 20일에 6개로 늘었다.

하지만 김시곤 전 국장이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전화를 받은 4월21일 밤부터 뉴스 구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일 밤 11시에 방송된 〈뉴스라인〉에는, 겨우 2시간 전 〈뉴스9〉에 나온 해경·정부 비판 보도 7개 가운데 5개가 사라졌다. 그중 하나는 KBS 단독보도였다. 이 밖에 ‘바다의 권력 VTS’ ‘해수부-해경 관할 경쟁’ ‘탈출 판단 선장에게 미뤄, 관제센터 소극 대응’ ‘민간 선박들 바다 뛰어내렸으면 구했다’ ‘진도선박관제센터, 지켜보고도 감지 못해’가 〈뉴스라인〉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대신 ‘경찰, 악성 유언비어 작성자 수사’ ‘한국을 위해 기도, 한류 팬도 한마음’ 따위가 들어갔다.

외압은 받았으나 영향은 받지 않았다?

다음 날인 4월22일 〈뉴스9〉 보도는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다. 해경 비판 보도는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실컷 잠을 잔 선장…위험 지역서 또 침실로 갔다’ ‘탈출하기 바쁜 선원들…구명정 2개 해경이 투하’ 등, 이 전 수석의 표현을 빌리면 ‘그놈들(선원)’을 질타했고 해경의 노고를 부각했다. 4월22일부터 29일까지 해경과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는 ‘총 4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4월30일 〈뉴스9〉는 갑자기 해경과 정부 비판 보도를 6개나 내놓는다. 4월30일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김시곤 전 KBS 국장에게 전화한 것은, 단순히 보도 한 꼭지를 문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4월30일 통화 직후 다시 〈뉴스9〉는 ‘약발’을 받았다. 〈뉴스9〉에 있던 ‘둘쨋날 밤 군 재투입, 황금시간 놓쳤다’가 〈뉴스라인〉에서 빠졌다. 나머지 5개 보도는 방송됐지만, 보도 순서가 밀렸다. 〈뉴스9〉 첫 꼭지였던 ‘사고 초기 해경, 언딘 때문에 군 투입 못해’는 네 번째로 보도됐다. 이튿날인 5월1일에는 4월22일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해경의 부실한 구조를 비판하는 보도는 줄고, 유병언 회장과 구원파, 다이빙벨을 비판하는 보도가 늘었다.

보도지침 논란이 일었지만, 청와대는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7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전 수석이 뉴스를 보고 이야기했던 것은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요청)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이 전 수석 또한 김 전 국장 개인에 대해서만 사과했다. 이 전 수석은 6월3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시곤 전 국장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 격 없이 전화한다는 게 말이 좀 지나쳤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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