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어느 언론사 면접시험을 볼 때 이야기를 들려줄까? 갑갑한 넥타이 죄어 매고 손은 무릎에 단정히 얹은 상태로 질문을 기다리는데 이유 없이 빙글빙글 웃던 면접관 아저씨가 아빠를 지목했어. “전공이 사학(史學)이구먼?”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면접관 아저씨가 이런 질문을 불쑥 내밀어. “그래, 역사가 뭐야?” 옳다구나 득달같이 대답을 하려는데 면접관이 이렇게 오금을 박았어. “E. H 카의 정의 말고 다른 거.”

아빠는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항상 E. H. 카라는 영국 사학자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는 명제가 모범답안이었다. 그걸 틀어버리니 아빠의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어버린 거지. 당연히 아빠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비록 아픈 추억이긴 하지만 아빠는 요즘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종종 되뇔 때가 있어. 대화란 어느 한쪽의 윽박지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야. 여러 쪽 말의 조각조각을 통해 서로의 진실에 접근하는 커뮤니케이션이지.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일방적 말은 결국 대화를 그르치고, 상대방의 진의를 왜곡시키는 법이다. 특히 상대가 전하는 말을 자신의 논리로 여과해서 제 귀에 달가운 것만 골라 듣는 것은 결코 올바른 대화법이라고 할 수 없어. 특히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서라면 더욱 그렇겠지.

ⓒ시사IN 자료 법륜 스님은 “상고사를 몰라서 우리가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 우리는 배달나라라고 하는 6000년 전의 역사 기록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할 때 현재가 과거, 즉 역사에 대해 말을 거는 방식을 사관(史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야. 사관에 대해 한 사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 “사관(史觀)은 ‘미리 만들어놓은 이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의 광범한 종합으로서 사관은, 귀납적인 결론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귀납적인 사실 입증이 없다면 사관이란 단순히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증거물을 찾아 헤매는 결과에 불과하다.” 좀 풀어서 말하면, 역사를 자신의 생각에 맞춰 규정하고 그에 따라 역사를 꿰어 맞춰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언젠가 일본에서 구석기 유물을 하도 많이 건져 올려 ‘신의 손’으로까지 불렸지만 그게 몽땅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던 일본 학자 후지무라 신이치 얘기를 해준 적 있지? 그의 엉터리 발굴이 진행되는 동안 몇몇 일본인은 환호했어. 그들에게 후지무라의 ‘발견’은 일본인의 역사가 수십만 년이나 된다는 증거였거든. 그들은 일본 ‘문명’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앞선다고 주장하며 의기양양하게 교과서에 싣기까지 했단다. 그들에게 일본의 역사는 그렇게 유구한 것이어야 했다.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후예여야 했고…. 그 일본인들은 이렇게 말하며 역사의 목을 졸랐던 거지. “너 일본 역사는 그래야만 해. 너는 이런 존재야!”

ⓒAP Photo ‘신의 손’으로 불리던 후지무라 신이치의 일본 구석기 유물 발굴은 모두 조작이었다.

며칠 전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났다.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인도의 일부 주 역사 교과서에서 빠졌다는 거야. 그 대신 힌두교 여신의 이름을 딴 ‘사라스바티 문화’라는 것이 실렸다. 이런 주들의 공통점은 ‘꼴통’ 힌두교 정당이 정권을 잡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 정당이 보기에 인더스 문명은 힌두교가 인도에서 자리를 잡기 전의 문명이었거든. 이를 인정하기 싫어서 전 세계 교과서에 거의 공통으로 실려 있는 인더스 문명을 교과서에서 빼버린 거지.

‘어떻게 이런 자들이 있지?’라고 혀를 끌끌 차겠지만, 사실 꼭 모자라는 사람들만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야. 모두가 존경할 만한 학식과 덕망을 갖췄거나, 아프고 혼란스러운 이들을 위무하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역사에 ‘무례’를 범하곤 한다. 며칠 전 아빠가 법륜 스님이라는 분의 강연록을 듣고 입을 딱 벌려야 했던 것처럼.

법륜 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새삼 설명하지 않겠어. 검색 한 번이면 그분의 어록과 설법이 모니터에 넘쳐날 테니까. 그런데 이분이 최근 옛 고구려 기행에 나서셨어. 우리 역사상 최강국이었고 오늘날 한국의 영어 국명 ‘Korea’의 원조(중원고구려비를 보면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고려’라 부르고 있어)라 할 고구려의 옛 땅을 돌아보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런데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역사’ 중에는 역사가 아닌 게 너무 많았다.

법륜 스님은 “중국에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6000년 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달나라라고 하는 6000년 전의 역사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유감스럽지만 사실이 아니다.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중국에는 6000년보다 더 오랜 시대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러나 6000년 전 ‘배달나라’ 기록으로 주장되는 문서들은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거든.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법륜 스님은 과거 일본인이나 인도 힌두교 정당 같은 말씀으로 아빠를 아연실색하게 하셨어.

“(황하 문명보다 훨씬 앞선) 요하 문명은 우리 ‘민족’이 이주해서 살게 된 첫 본거지라고 짐작해볼 수 있으며… 이름을 붙인다면 ‘배달 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세계에서 최고로 앞선 문명입니다.”

오늘날의 이집트인은 피라미드 쌓던 그 이집트인의 직계 후손이 아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로마인들은 과거 로마제국 사람들과는 거의 다른 종족이야. 혈통이란 장구한 세월과 역사 속에 섞이고 흩어지고 분화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우리 ‘민족’만은 거의 6000~7000년 동안 길이 보전돼왔다는 주장을 하시니 입이 벌어질밖에.

부여 귀족 집단 호칭을 고구려 호칭으로 착각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에서 고분벽화를 얘기하실 때는 완전히 사실과 다른 말씀을 태연하게 내놓으셨다. “(고구려에는) 5가 아시죠? 마가·구가·우가·저가·양가….” 알다시피 마가·구가·우가·저가는 부여에 있던 귀족 집단의 호칭이야.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하실 말씀은 아니지. 착각하실 수도 있다 싶어서 그냥 빙긋 웃던 아빠는 신라가 불교 국가인 가야와 합치기 위해 불교를 공인했고, 가야는 신라와 ‘합의 통합’을 이루었다는 말씀에 이르러 그만 표정이 얼어붙고 말았어.

가야가 불교 국가라는 근거로 법륜 스님은 김수로왕의 왕비가 ‘아유타’에서 왔고 불교를 전래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드신다. 그러나 불교를 매개로 가야와 신라 양국이 통합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아무것도 없어. 더욱이 가야는 네가 알다시피 통일된 한 나라가 아니라 ‘가야 연맹’이었다. 그중 하나인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 신라에게 항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통합’이라기보다는 ‘흡수’였다. 심지어 대가야의 경우, 전쟁을 치른 끝에 신라에 합쳐졌다.  

아빠는 많은 사람들의 멘토로서 속 시원한 냉수처럼 그들의 속을 풀어주기도 하고 정다운 손길로 등을 두드려주시던 법륜 스님을 존경해. 그런데 자신의 영역이 아닌 분야에 굳이 들어오셔서 전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자신 있게 토로하시며 “이 상고사를 몰라서 우리가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시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나. 아빠는 굳이 우리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길지 않더라도, 요하 문명이 우리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긍심을 느낀단다. 왜 우리가 분명하지도 않은 역사에 자긍심을 느껴야 하고, 또 그러지 않으면 마치 ‘열등감에 휩싸인’ 이들로 매도돼야 할까. 아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렇게 묻고 싶어진단다. “혹시 우리 역사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과거에 윽박지르고 계신 건 아닌가요? 그러면서 과거와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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