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내 ‘개취’는 라디오를 타고

온기 가득한 익명의 ‘5분’

 

 

1906년 레지널드 페센든이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이래 ‘나도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은 꾸준히 젊은이들의 마음을 간질였다. 라디오가 매스미디어의 맨 윗자리를 텔레비전에 양보한 이후엔 더더욱 그랬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공략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달리 온전히 청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라디오는, 점점 바로 옆에서 1대1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내밀함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디스크자키(DJ)가 읽어주는 사연에 혼자 키득대고 그가 고른 선곡 리스트에서 취향을 공유하는 ‘동류의식’을 읽어내는, 이 다분히 사적인 체험. 테크놀로지가 텔레비전을 넘어 가상현실(VR)의 시대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DJ를 꿈꾸는 이들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꾸는 이들이 많으면 방법을 궁리하는 이들도 많은 법. 유사 DJ 체험 또한 시대별로 기술의 발전을 거치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지금의 40~50대는 음악감상실이나 다방, 심지어는 분식집에까지 DJ 부스가 있던 시절을 겪었고, 1990년대 초반 청춘을 보낸 이들 중엔 크리스천 슬레이터 주연의 영화 〈볼륨을 높여라〉(1990)를 보고 아마추어 무선(HAM)에 취미를 붙이거나 중·고등학교 방송반 문을 두드려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세이캐스트나 인라이브에 가입해 윈앰프 방송을 개설하고는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는 재미를 경험해본 20~30대 또한 그 수가 적지 않다. 여기에 각자 선곡 센스를 과시하기 위해 은근한 경쟁이 일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블로그 배경음악(BGM) 플레이리스트까지 더하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DJ가 되는 경험이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사IN 이명익스마트폰과 세상에 말을 걸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개인 방송’이 가능하다.

오늘날 DJ를 꿈꾸는 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매체는 역시 팟캐스트다. 2012년 대선 때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어 팟캐스트 시장은 이제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정치·사회는 물론 어학·인문학·철학·대중문화·젠더·섹스·미식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팟캐스트가 등장했고, 지상파가 미처 말하지 못한 솔직한 이야기나 지상파를 타기엔 너무 소소한 이야기 따위도 너끈히 소재로 포용하는 방송들이 등장했다. 과거 〈나는 꼼수다〉처럼 압도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는 팟캐스트의 수는 줄었지만, 참신성과 다양성 면에서만은 지상파 라디오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한 것이다. 한 시간 넘게 고양이 관련 지식만 알려주는 〈키티피디아〉 같은 방송이나, 최근 휴방을 결정한 〈누군가의 자작곡〉처럼 청취자들이 직접 만든 자작곡을 사연과 함께 받아 틀어주는 특색 있는 방송은 기존의 라디오였다면 아마 편성이 어려웠으리라.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라디오 DJ’ 데뷔

물론 누군가에겐 팟캐스트 녹음과 편집, 호스팅 업체 물색과 홍보 등이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한 실시간으로 청취자와 소통하는 것을 라디오의 묘미라 믿는 이들에겐 녹음과 편집 과정을 거쳐야 하는 팟캐스트가 조금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행히 기술이 발달한 덕에 팟캐스트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하나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트윗캐스팅이나 트위터 기반의 페리스코프, 최근 시작한 페이스북 라이브 등, 생방송 스트리밍 서비스는 비디오용으로 주로 활용되지만 라디오용으로도 가능하다.

페리스코프(왼쪽)와 페이스북 라이브(오른쪽) 등 생방송 스트리밍 서비스도 활용할 수 있다.

아예 인터넷 라디오를 표방한 서비스들도 등장했다. 올해 초 등장한 ‘소셜 라디오-스푼’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어렵지 않게 라디오 방송이 가능하고, 청취자들과의 실시간 채팅 또한 어렵지 않다. 좀 더 전문적인 라디오 방송을 원하면 믹슬러(mixlr) 서비스도 참고할 만하다. 무료 플랜으로도 한 번에 한 시간씩 방송을 하는 게 가능하지만, 유료 플랜에 가입하면 좀 더 전문적인 방송이 가능하다.

내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이나 긴 방송 시간을 채울 만한 이야깃거리는 없다고? 그래도 괜찮다.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에서는 좋은 시나 소설의 한 구절을 낭독한 목소리를 녹음해 1분 내외의 동영상을 올리는 이들이 인기를 끌고, 익명 기반 SNS 어라운드에선 아예 ‘#어라운드라디오’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음성 콘텐츠를 올리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재생 시간은 최대 5분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도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생각과 취향의 주파수가 맞는 청취자들을 만난다. 바야흐로 광대역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서툴게나마 세상에 말을 걸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DJ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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