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첫 서울시 교육감 직선에서 당선한 공정택 후보.
“저는 강남을 잘 알아요. 여긴 서울의 중심이고, 모든 교육의 시발점이에요. 훌륭한 대학에 진학할 노력을 가장 열심히 하는 곳도 바로 이곳 강남 아닙니까.” 지난 7월29일,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앞에 세워진 선거 유세 트럭 위에서 공정택 후보(74)는 아낌없이 ‘강남 예찬론’을 펼쳤다. 지지자들과 길을 지나던 시민이 뒤섞여 연설을 들었다. 공 당선자가 “강남에 대한 교육 역차별을 없애겠습니다!”라고 소리 높일 때마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 7월30일 제17대 서울시교육감에 당선한 공정택 현 교육감은 선거 전 막판 거점유세 장소로 ‘강남’을 택했다. 선거 이틀 전에는 강남역 앞, 하루 전에는 삼성역 앞에 유세 트럭을 세웠다. 공 당선자는 일단 강남을 ‘칭찬’했다. “여기는 학생들 성적이 참 높아요. 명품 방과 후 학교도 아주 잘 운영되고 있고요.” 다음에는 ‘반(反)전교조’를 호소했다. “동작·관악·금천 같은 데랑 달리 여기 서초·강남은 학부모가 똘똘 뭉치면 전교조가 꼼짝을 못해요. 비장한 각오로 전교조를 막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약속했다. “비강남 지역이 교육 예산 많이 가져가겠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강남은 늘 역차별을 받았어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남 유권자는 ‘몰표’로 화답했다. 강남구 61%, 서초구 59%, 송파구 48%의 투표자가 공 당선자를 지지했다. 2위인 주경복 후보가 받은 득표율과는 2~3배가량 차이가 났다. 공 당선자는 서울시 25개 구 가운데 17곳에서 주 후보에게 밀렸다. 2만2053표, 1.78% 포인트라는 근소한 차이로나마 이길 수 있었던 건 강남 지역의 압도적인 득표율 덕분이었다.

“강남 엄마들, MB 찍는 마음으로 투표”

무엇이 ‘강남 몰표’를 불렀을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에서 “강남의 계급 투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철저히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 쪽으로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학부모 이 아무개씨는 “여기 엄마들 분위기를 보면 이명박 찍는 거랑 공정택 찍는 거랑 마인드가 거의 같다”라고 말했다. “다들 이명박 대통령이 집값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처럼, 공정택 교육감이 자기 아들딸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치동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했던 한 학원 원장은 선거 기간에 공 당선자에게 악재로 작용했던 ‘수서 임대아파트 설립 반대 사건’이 오히려 강남 쪽에서는 표를 모으는 구실을 했다고 분석했다. “바깥 사람에게는 욕먹을 만한 일이었지만 강남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강남 사람이 그렇게 영악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송경원 진보신당 교육정책연구원은 이번 선거 결과를 ‘강남의 자기 발등 찍기’라고 설명했다. “공 후보가 주장하는 학교선택제나 특목고 확대 따위 정책은 오히려 강남 학생들에게 손해가 된다. 자기보다 낮은 계급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사람들인데, 강북 학생이 강남으로 오고 강남 학생이 강북으로 가게 되는 학교선택제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송 연구원은 “결국 공정택 선본에서 내세운 전교조 대 반(反)전교조 구도가 먹혀, 정책을 자세히 따져보지도 않은 채 공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라고 분석했다.

공 후보를 찍었든 다른 후보를 찍었든 아예 선거를 하지 않았든, 대다수 ‘강남 엄마’는 “전교조 성향인 주경복 후보가 싫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서초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 학부모 정 아무개씨는 “기호 1번과 6번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6번은 전교조와 관련이 있어 1번을 찍었다”라고 밝혔다. 서초구 잠원동에 거주하는 홍 아무개씨는 기호 5번 이인규 후보를 찍었다. “일단 전교조 쪽에서 미는 주 후보는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장 호감도 낮은 후보가 바로 6번이었다.” 더운 날씨를 핑계 삼아 투표를 포기한 심 아무개씨는 “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 신물이 나 6번을 찍으려다가 전교조 성향 같아서 지지를 접었다. 오히려 ‘부적격 교사 5% 퇴출’을 내세운 기호 3번 박장옥 후보가 끌리더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구에 공 당선자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공 당선자의 ‘반 전교조’ 전략은 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전교조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집단 이기주의”를 들었다. 교원평가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는 주경복 후보를, 강남 학부모들은 결국 ‘전교조와 한 패’라고 인식했다. 주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거듭 “전교조와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지만 먹히지 않았다. 심 아무개씨는 “차라리 당당히 전교조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하면 될 것을, 자꾸 아니라고 하니 미꾸라지 같은 느낌이 들면서 싫더라”고 비난했다.

강남 사람의 욕망은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어떤 이는 경쟁 교육이 더 강화되기를 원했고, 어떤 이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어몰입 교육에는 찬성하지만 특목고 확대에는 반대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특목고는 늘리되 영어몰입 교육은 신중하기를 바라는 학부모도 있었다. 공 당선자는 이렇게 다양한 ‘강남의 욕망’을 파악하고 대응했다. 평준화를 반대하는 학부모를 위해 학교선택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되, 그 제도로 인한 ‘강남 학생 강북행, 강북 학생 강남행’을 염려하는 학부모를 안심시킬 줄도 알았다. 공 당선자는 지난 7월29일 삼성역 유세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절대로 강남 학생들이 강북으로 갈 리가 없다. 그쪽에서 여기로 오지도 않는다. 내가 책임진다”라고 말했다.

7월30일 밤 10시쯤, 중구 광희동 공정택 선거사무소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지지자들이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했다. 개표 초반에는 주 후보가 앞서 나가다가, 서초·강남구 투표함이 열리자 상황이 역전됐다. “강남 3구에서 탄탄하게 받쳐주니까 다른 데서 차이 나도 상관없어.” “강남은 우리가 준비한 지역이니 문제 없어.” 여기저기에서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비슷한 시간, 종로구 교남동 주경복 후보 선거사무소에는 정적이 흘렀다. 서초·강남·송파구 표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서초특별시를 하나 만들어야겠군”이라거나 “서울에서 강남을 적출해야 해”라는 힐난도 들렸다. 박정훈 선본 상황실장은 “강남 성향은 원래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라고 말했다. 강남 대치동에 살고, 아들을 영재 교육원에 보내면서도 주경복 후보에게 투표한 이 아무개씨는 주 후보에게 ‘영악함’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뽑히기 위한 선거였으면, 강남 사람들의 욕망도 읽고 좀 맞춰줬어야 했다고 본다. 여론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한 시대 아닌가.”

기자명 변진경 기자, 변태섭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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