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게임이 출시되는데도 큰 바람이 불지 않았던 인기 게임 순위의 저 높은 꼭대기에 강풍이 몰아칠 모양이다. 이름마저도 ‘블리자드’. 출시하는 작품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이 제작사의 신작 출시가 임박하자 게이머들뿐 아니라 관계사들도 베타테스트에서 나오는 호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5월24일 출시되는 FPS(1인칭 슈팅) 게임 〈오버워치〉는 무료 테스트 기간에 PC방 점유율 3~4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동안 명성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은 출시작들 때문에 고심했을 블리자드도 한숨 돌릴 만한 반응이다.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보여준 신화적 세계관과 게임성의 접목,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의 대명사가 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에서 보여준 던전플레이와 서사 진행의 병행 등, 블리자드는 이번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기존 게임 노하우를 바탕으로 블리자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장르로 풀어냈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아는 제작사가 뽑아든 칼은 일단 대중이 보기엔 날카롭다.

오픈 베타를 통해 공개된 게임의 만듦새는 호평을 받을 만했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전략적 가능성의 폭을 두어 지루하지 않았고, 초심자들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캐주얼했으며, 이를 속도감 있는 플레이에 녹여냈다. 대중적으로 흥행하리라 예상된다.

<오버워치> 캐릭터에는 인간·로봇·사이보그가 섞여 있다.

FPS는 이른바 총싸움 게임이다. PC방 등에서 얼핏 3차원 공간에서 누군가 총 쏘는 게임을 봤다면 바로 이 종류의 게임이다. 최근 게임일수록 현실적인 무기와 장비로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춰오던 것이 FPS 게임의 흐름이지만, 〈오버워치〉는 그보다 SF에 무게를 두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물리적 능력의 근거를 위해 게임은 2060년의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삼는다. 캐릭터들의 신체는 기계로 대체되거나 아예 100% 로봇이기도 하다. 그들은 강화된 신체를 통해 초능력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다. 팔다리의 사이보그화를 넘어 인간 이상의 사고와 자의식을 지닌 로봇이 등장하는 〈오버워치〉 속 2060년 지구는 인간과 로봇 그리고 사이보그가 어우러져 사는 곳이다.

기계와 인간이 얽혀 있는 근·미래 SF 세계관은 단지 물리효과를 위한 장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블리자드의 전작들처럼 세계관은 게임성과 밀접하게 연관하며 상호작용한다.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킬로 뒤덮인 전장의 승패는 ‘옴닉’이라 불리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갈등과 공존의 사이에서 맞물리는 스토리와 이어지면서 더욱 깊은 맛을 낸다.

게임은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순간이동이나 벽 타기, 시간 왜곡 등의 SF 요소와 엮이게 되는데 현실적 설득력을 놓지 않아 SF 기반의 하이퍼 FPS 전성기를 누린 〈퀘이크 3〉나 〈언리얼 토너먼트〉의 매력을 복원했다. 현실적인 움직임을 중시하는 최근 밀리터리 FPS의 흐름과 달리 〈오버워치〉는 과장된 액션성에 빠른 템포를 얹어 좀 더 가볍고 시원한 느낌이다.

대표적 전투 지도인 런던 ‘왕의 길’의 경우 공격팀은 숨겨둔 화물 운송차량을 확보한 후 이를 목표 지점까지 운송해야 하는데, 도착 지점은 런던의 옴닉 집단거주 구역이고 차에 실려 있는 화물은 다름 아닌 EMP 폭탄이다. ‘왕의 길’ 전투는 따라서 옴닉을 EMP로 말살하려는 테러 집단과 이를 저지하려는 집단이 부딪치는 장면이다. 이는 옴닉 사태 이후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고자 노력해온 인간과 옴닉 간의 평화 상태를 무너뜨리려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해주는 장면이다.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의 위상을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질문은 사실 그리 참신한 주제는 아니다. 많은 SF들이 오래전부터 비슷한 주제를 다뤄왔고, 심지어 블리자드 사의 전작인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프로토스가 전투용 인공지능 기계인 ‘정화자’를 인격으로 대우하면서 프로토스의 일원으로 인정해주는 장면이 나온 바 있었다.

서사 중심의 게임이 펼치는 세계관의 깊이와 비교한다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 2015년 〈폴아웃 4〉가 인공지능에 대한 가치판단을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겨버리면서 질문의 크기를 키웠던 것과 달리, 〈오버워치〉에서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SF의 배경에서 풀어내기 위한 설정의 일환으로 둘의 대립을 명확하게 하는 선에서 그친다. 대전 중심의 온라인 FPS로서는 보기 드문 시도임은 분명하다.

PC방 점유율 1위 〈리그 오브 레전드〉 꺾을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박진감 넘치는 전장은 선악의 대립이 명확한 세계관을 통해 ‘왜 싸우는가’ 하는 물음에 답함으로써 근본 있는 하이퍼 FPS로서 입지를 다진다. 그러나 〈오버워치〉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새로운 시도를 더하는데, 이야기의 진행이다.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면 플레이어의 진행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오버워치〉나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대전 중심 게임은 한 판 한 판이 다음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독립적이므로 게임 진행 안에서 서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등장하는 지도나 캐릭터의 설정에 세계관을 부여하고 서사에서의 시간 진행은 대부분 멈춰진 채 유지되곤 한다.

〈오버워치〉는 이 문제를 게임 외적 매체를 통한 외연 확장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게임의 정식 출시 이전부터 풀리는 단편 애니메이션과 소설, 만화 등을 통해 〈오버워치〉의 세계관을 조금씩 공개하고 있다. 게임이 중심이되 세계관과 이야기가 반드시 게임을 통해서만 풀려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식 출시와 더불어 많은 부가 콘텐츠들이 풀릴 것이고, 앞으로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에 맞는 이야기의 진행이나 숨겨진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신규 캐릭터 출시나 새로운 전장의 등장에 맞춘 부가 콘텐츠 공개는 블리자드가 워낙에 잘해오던 영역이고, 초기 설정에서 의문을 불러오는 많은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공개된다면 게임 속 전장의 평행우주와 게임 밖 콘텐츠의 이야기 전개라는 투 트랙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재미가 상당할 것이다.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을 넘어서, 보는 콘텐츠 혹은 떠드는 콘텐츠로 발전해가는 e스포츠의 관점에서 블리자드는 나름의 지분을 자랑해도 무방한 제작사다. 갈수록 왕년의 흥행작에 안주해버리는 듯한 최근의 행보에 실망한 게이머들도 많지만, 1등도 해본 사람이 하는 법이니만큼 절치부심의 흔적이 보이는 〈오버워치〉는 기존 판을 흔들 가능성이 높다.

4년 가까이 PC방 점유율 1위를 고수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꺾을 정도의 바람을 감히 예상할 순 없겠지만, 무료 테스트 기간이 끝나자 금단현상을 토로하는 게이머들이 속출할 만큼 반향은 예측 범위 안쪽에 있다. 특히나 유사 장르로 평가받는 만년 ‘홍진호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게임인 〈서든 어택〉은 여러모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모바일 게임의 매출 기세에 밀려 PC 게임의 위세가 과거만큼은 아니라지만, 시간 날 때 짬짬이 손대는 모바일 게임과, 게임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동시에 내는 PC 게임이 갖는 재미는 아무래도 다른 영역이다. 간만에 등장한 메이저 게임사의 신작은 〈오버워치〉 주인공 격인 트레이서의 대사처럼 게이머들에겐 즐겁고 설레는 소식이다. “새로운 게임은 언제나 환영이야!”

기자명 이경혁 (게임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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