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꺼정 밥을 못 먹었소? 워째쓰까잉~.” 식당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주인장이 결국엔 골목 밖으로 직접 나서 객들을 안내한다. “저긴 매운탕을 잘하는 집” “저긴 한정식이 유명한 집”이라며 일바지(몸뻬) 차림에 잰걸음으로 식당가를 소개하는 그가 바로 금산여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홍성순씨다.
2014년 여름 전북 순창읍내에 문을 연 금산여관은 팬덤을 몰고 다니는 게스트하우스다. 목적지를 고른 뒤 숙소를 찾는 일반 여행자와 달리 숙소가 궁금해서 순창을 찾았다는 이가 있을 정도다. “순창의 명물은 고추장보다 금산여관”이라는 홍보 문구도 팬들이 만들어줬다.
숙소 자체는 1938년에 지어진 오래된 한옥이다. 광복 이후 여관으로 쓰이다 현대화된 인근 숙소에 밀려 문을 닫은 뒤 11년간 폐가로 버려져 있던 집을 되살려냈다. 도미토리에서 가족실까지 객실은 총 7개. 이들 방에 놓인 방명록을 펼쳐보면 첫 장에 주인장이 직접 쓴 시 ‘반대’가 자필로 적혀 있다. “가고 싶어 가는 길이니// 어두워도/ 돌부리에 넘어져/ 피가 흘러도// 훌훌 털고/ 씨익 웃으며 걸어가리라(후략).” 다국적 의류업체에서 ‘일 잘하는 매니저’로 통하던 홍씨가 어느 날 불현듯 회사를 그만두고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이 보였던 극심한 반대에 맞서며 썼던 시다.
부서지고 무너진 한옥을 살려낸 뒤, 본채를 커뮤니티 공간으로 개방하겠다고 했을 때 홍씨는 두 번째로 ‘미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한옥의 노른자위라 할 이 공간을 숙소로 활용하면 손님을 몇 팀은 더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소신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 이름조차 낯선 작은 도시에서, 배낭 멘 여행자가 찾아들어 편히 쉴 수 있는 ‘여행자의 집’을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평생을 여행자 DNA로 살아온 홍씨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두툼하고 푹신한 광목이불 앞에 마음이 사르르
이렇게 재탄생한 금산여관은 넉넉한 쉼터가 있는 본채 외에 정감 넘치는 객실과 단아한 정원을 갖추고 있다. 곳곳에 있는 소품 또한 독특하다. 온도계며 빗물받이 하나 예사롭지 않다. 본채 벽면에는 크고 작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게스트로 인연을 맺은 사진작가들이 선물로 보내왔다는 작품들이다. 아프리카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신미식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홍씨의 설득에 넘어가 금산여관과 담을 맞대고 있는 순창군립도서관에 작품 30여 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금산여관은 기품 있고 화려하다기보다 손때 반질반질하니 서민적인 한옥에 가깝다. 그 때문에 ‘사진발에 속았다’고 불평
하는 게스트도 종종 있다. 다만 잠자리로 제공되는 두툼하고 폭신한 광목이불 앞에서만은 너나없이 흐뭇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언젠가는 이불 위에 ‘왕인(王人)의 잠자리에 걸인의 봉투를 올립니다’라고 쓴 숙박비 봉투를 놓고 간 여행자가 있었을 정도다. “꽃잠 잘까?” “당신 참 좋다”처럼 하얀 베개에 수놓은 글씨도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본래 순창이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다. 고추장마을이 알려진 정도다. 이에 대해 순창이 고향인 주인장 홍씨는 할 말이 많다. 단풍으로 유명한 강천산 외에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부가 주둔한 회문산이 있으며, 섬진강 자전거 트레킹 코스 또한 지척이라는 것이다. 장군목유원지에서 출발해 구담마을~진뫼마을로 이어지는 걷는 길은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물길이기도 하다.
이런 볼거리를 굳이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숙소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게 신상문씨 말이다. 신씨는 동료 사진작가의 블로그를 통해 이 집을 알게 된 뒤 두어 달에 한 번씩 순창을 찾는다는 금산여관 마니아다. 본래 집 밖 나들이를 꺼린다는 아내 김현정씨는 “어느 날부턴가 남편이 툭하면 순창 간다기에 처음엔 여자라도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한번 따라와본 뒤 두 딸과 함께 온 가족이 시간 날 때마다 순창을 찾고 있다”라며 웃었다. 이곳에서 묵으면 옛날 외갓집에서처럼 깊은 잠을 이룰 수 있어서란다.
그 중심에 여행자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한옥과 그 주인장 ‘홍대빵’이 있다(홍대빵은 홍성순씨 닉네임이다). ‘기-승-전-순창’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입담에 마음이 동해 순창으로 귀촌한 게스트만 그간 일곱 명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구들장 이야기 쇼’도 열린다. 요리사 윤영배씨와 게스트들이 합심해 만든 제철 음식을 맛보면서 토크 콘서트가 벌어지는 자리다. 궁금한 분은 금산여관 블로그에서 일정을 참조할 것. ●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229
홈페이지 blog.naver.com/tinyss99
체크인 오후 4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조식 제공 누룽지 또는 그때그때 메뉴, 주인이 직접 내리는 드립커피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구담마을에서 출발하는 섬진강 트레킹, 27번 국도 구이·운암저수지 방면 드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