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두 가지를 생각한다. 경포대와 커피. 경포대 간다는 사람이 진짜 경포대 가는 건 못 봤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경포대는 경포해변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왕 경포해변까지 갔으면 해변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경포대도 가볼 일이다. 경포대 주변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경포호를 휘 둘러보는 것도 ‘제대로’ 강릉을 경험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아예 커피거리로 조성된 안목해변에는 횟집보다 카페가 더 많다. 안목해변은 애초 커피 자판기가 100대쯤 들어서 있어 ‘길카페’라 불렸던 곳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법. 안타깝게도 커피거리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힘들다. 안목해변에서는 서울에서처럼 커피가 아닌 ‘부동산을 마시는’ 느낌으로 앉아 있길 권한다. 강릉 바다는 제주 바다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하는데, 해변에 늘어선 카페마다 전망만은 일품이다.

ⓒ시사IN 장일호

그 경포와 안목을 잇는 길이 있다. 한쪽으로는 바다를, 또 한쪽으로는 해송을 끼고 평탄하게 이어지는 난이도 0에 가까운 바우길 5코스의 일부.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경포해변과 안목해변 사이에서 작은 해변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강문해변이다. 강릉 최대 규모라는 강문어화횟집이 들어서 있다. 초행길의 여행자에게는 이 횟집이 숙소를 찾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 횟집 바로 뒤, 그러니까 강문해변에서 걸어서 90걸음. 샛노랗게 칠한 작은 단층집이 하나 있다. 게스트하우스 ‘감자려인숙이’다. 장담컨대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은 앞으로 강릉을 생각할 때 세 가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경포대, 커피, 감자려인숙이. 물론 호오를 떠나서 말이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에 주의하자. 언뜻 ‘여인숙’으로 읽힐 수 있다. 감자(感者), 려인(旅人), 숙이(宿移). 두 자씩 떼어내 따로 읽어야 이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기를 꿈꾸는 예술가들(감자)과, 떠돌며 여행하는 여행자들(려인)이, 쉽고 편하게 묵어갈 수 있는 곳(숙이).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간판에 쓰인 또 다른 이름은 ‘떠돌이 한 시절 공동체’다.

영상 작업과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행자로 살아가던 ‘삶은달걀’과 ‘고구미’는 2012년 호주머니 속 먼지까지 털어 강릉으로 내려왔다. 서울의 4평짜리 옥탑방 보증금은 강릉에서 방 3칸, 화장실 2개, 뒷마당까지 얻을 수 있는 돈이었다. 비록 다 쓰러져가던 허름한 단층 주택이었지만 말이다. 공사비는 소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모았다. 모금은 목표 금액의 153%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쳤다. 모텔과 여관과 찜질방 사이에서 갈등하던 가난한 여행자들이 ‘여행자의 집’을 만든다는 계획에 공감했다. 지금이야 강릉에 50여 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지만 감자려인숙이는 강릉의 초창기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다. 바닷가는 여름에만 손님이 오는 줄 알았던 주변 숙박업소 주인들은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감자려인숙이를 마냥 신기해했다. 그렇게 감자려인숙이는 강문해변을 새롭게 ‘발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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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성수기 바닷가 근처 숙박업소 주인들은 극성수기, 초성수기 따위까지 정해서 요금을 세분한다. ‘한철 장사’다 보니 숙박료도 덩달아 춤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만실’이래봤자 손님 12명이면 꽉 차는 감자려인숙이는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히 비싸게 요금을 책정하지 않았다. 에어컨과 난방에 드는 요금 정도만 더 받으면 될 거 같았단다. 추가 요금은 5000원이면 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할머니가 찾아왔다. 숙박료를 싸게 받는다는 비난으로 시작해서 걱정 섞인 지청구로 끝났다. 젊은 사람이 장사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이렇게 답했다. “할머니…, 저희는 모르는 사람 6명이 같이 자요.”

‘마녀’가 갈아 내린 드립커피에 술을 섞으면…

삶은달걀과 고구미 커플은 오픈 6개월 만에 선배 부부에게 감자려인숙이를 넘기고 ‘여행자’로 돌아갔다. 애초 강릉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겠다는 고구미 커플의 계획에 회의적이었던 ‘마녀’와 ‘그림자’는 어쩌다 보니 감자려인숙이의 안주인으로 4년째 살고 있다. 게스트에 대한 간섭은 최소화한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아무도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식이다.

수건 한 장이 제공되고 기본적인 세면도구도 갖춰져 있지만 세면대는 없다(양변기는 있으니 안심하시라). 그럼에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마음이 누긋해지는 순간, 감자려인숙이는 강릉에 있는 ‘우리 집’이 된다. 그래서일까. 재방문객이 많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장기 투숙하는 손님도 심심찮게 있다. 수리가 필요한 곳이 생기면 손님들이 알아서 고친다.

명절이거나 여행이 ‘땡길 때면’ 게스트들에게 집을 맡겨놓고 훌쩍 떠나기도 한다. 4년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니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나 머물 곳이 생겼다. “우리 에 왔다”고 연락하면 감자려인숙이에 왔던 손님들이 호스트가 되어 주인 내외를 맞아준다.

게스트의 성향에 따라 감자려인숙이의 모습은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어떤 날은 낮부터 흥청흥청하는 반면, 어떤 날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고요하기도 하다. 그야말로 그냥 ‘집’이다. 적당히 어지러운 모양도 꼭 내 방 같아 낯설지 않았다. 감자려인숙이에서 묵는다면 커피맥주(소주)를 한잔 청해 마셔보자. 마녀가 원두를 갈아 내린 드립커피에 술을 섞어 제조한다. 강릉 제1의 ‘특산품’으로 꼽아도 좋을 정도다.

 

주소 강원도 강릉시 창해로 351-2

홈페이지 cafe.naver.com/gamjzas

체크인 오후 3시  체크아웃 오전 11시

조식 제공 토스트, 우유, 달걀 등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제대로 해장 가능한 고분옥할머니순두부, 옛태광식당(우럭미역국과 회덮밥), 동화가든(짬뽕순두부), 폴앤메리(수제 버거)

20자평 강릉에 가면 ‘내 방’이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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