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중2 남학생들을 가르친다. 건의문 쓰기를 했는데 근거 분석이며 문장 구성, PPT를 만들어 발표하는 능력 등이 고등학생 수준에 가까운 뛰어난 아이들이 꽤 많아졌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자란, 부모가 꽤 신경 써서 키운 흔적이 보이는 아이들이다. 어려서부터 사교육도 많이 받고 다양한 체험활동과 해외여행을 경험했으며 폭넓은 독서로 어휘력도 풍부한 이런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한 무리, ‘보통 아이들’이 있다. 그 나이 또래 특유의 방황과 고집을 지녔지만 나름 어른들의 세계를 수용하려는 어린 사람다운 천진함도 가지고 있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지만 놀고 싶은 욕구에 쉽게 무릎 꿇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

과거에는 이들이 교실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80% 이상의 ‘보통 아이들’이 두껍게 중간층을 이루고 극소수의 뛰어난 아이들과 극소수의 불안한 아이들이 나름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보통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상처가 쌓여 분노조절 장애, 집중력 부족, 우울감, 사회적 도덕감 결여, 무기력증, 신경증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지적 수준이 초등학생 정도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사회 전반에서 가정이 무너지는 일이 잦으니 교실 속 아이들 중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한 채 불편한 마음으로 학교에 와 앉아 있는 아이들이 느는 것이다. 건강한 부모 밑에서 별 탈 없이 자라도 공연히 어른들이 싫고 세상이 못마땅한 시기가 사춘기이다. 하물며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모가 이혼하는 등 부모로부터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사춘기를 통과하는 아이들은 이 시기를 견뎌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면서, 싸우거나 담배를 피우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등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를 품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과거에 ‘문제아’ ‘부적응아’라고 불렀던 이런 아이들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박해성 그림

아이들은 처지가 비슷한 아이끼리 주로 어우러져 논다. 고차원의 어휘를 구사하는 변호사, 의사가 꿈이라는 아이들과 그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담장이 높이 놓여 있다. 특출한 아이들과 일탈을 일삼는 아이들은 부딪침도 별로 없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운 듯하지만 사실은 높은 담장 때문에 부딪침이 일어나지 않아서 유지되는 평화인 것이다. 아이들 사이의 싸움은 어슷비슷한 아이들 사이, 혹은 경계선에서 주로 일어난다.

특목고네 자사고네 무리 짓는 중2

교실에서 계급이 느껴지는 것은 교사 초임 때이던 27년 전에도 그랬지만 그 격차가 이토록 심하지는 않았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꼬질꼬질하고 덩치가 작은 아이도 축구할 때 같이 끼워주었고 잘난 체가 몸에 밴 우등생도 쉬는 시간에는 함께 어우러져 팔씨름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지혜롭고 너그러운 몇몇 아이들이 교실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보통 아이들의 권력’이 교실에 없다.

1980년대에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경제적 상황이나 학업성적에 따라 영원히 ‘계급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 학점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앞날이 결정되곤 하던 시절이었다. 대기업 2세도, 판잣집 아들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은 고등학교로 끝이라고 비장하게 말하던 그 시절은 그나마 덜 불행했던 것일까.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면 벌써 진학할 고등학교를 두고 특목고네, 자사고네 무리를 짓는다. 그들이 진학할 고등학교의 편차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계급의 편차이기도 하다.

어쩌면 학교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닮았는지도 모른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상대적 박탈감이 피해의식으로 남은 사회, 상위 1%만 행복하고 99%는 불행한 사회를 말이다. 이 사회는 부자만 행복한 세상일지 모르겠지만, 교실에서는 공부 잘해서 좋은 고등학교를 가도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게 그나마 아이들에게 주어진 ‘평등’인지도 모른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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