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창 (변호사)
말 실수를 했다. 이전 칼럼(〈시사IN〉 제42호) ‘지금 누가 법을 죽이는데’라는 제목의 필자 글에서 “힘내라 검사들”이라고 응원한 건 정말 실수였다. 글은 최근 촛불집회 등에 대한 공권력 남용 염려와 관련해 정부의 법률 전문가인 검사들이 나서서 법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를 밝히고, 궤도를 이탈한 공권력 행사를 바로 잡아달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검사들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국세청과 15년 이상 지루하게 끌어온 세금 소송을 고등법원의 중재로 종결한 KBS 사장을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이유는? 세금 분쟁을 끝냄으로써 KBS를 적자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사장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다. 당시 KBS는 세금 소송을 계속해야 하는 악순환 고리에 걸려 정상 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법원조차 국세청과 조정해 분쟁을 종결하는 것은 ‘적법한 경영행위’라고 판결한 바 있다.

지금 검찰의 수사는 지나친 ‘정치 행위’라고 비난받는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세금 소송 조정을 합의한 관계자, 즉 국세청과 서울고등검찰청, 고등법원 담당 재판부까지 공범 여부를 확인하는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온갖 사퇴 압력과 함께,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들어간 후 돌연 시작되었다.

검사들은 또 MBC 〈PD수첩〉팀을 겨냥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촛불집회의 배후로 〈PD수첩〉을 지목하고 처벌을 요구한 이후이다. 이유는? 번역을 잘못해서란다. 이른바 ‘오역죄’다. 중세시대의 반역죄는 들어보았어도 오역죄는 처음 듣는다. 그러나 수사 과정을 보면 반역죄만큼이나 중대 범죄로 다루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라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 무슨 해괴한 법리인가? 정부 부처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장관이 피해자라면 이미 사임한 경우도 그 개인이 계속 피해자가 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아닌 장관이라는 직위가 피해 당사자인지 새로운 법 이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연합뉴스6월30일 ‘전국 부장검사회의’에 참석한 임채진 검찰총장(앞)과 박한철 공안부장(뒤).
창조적이지만 납득하긴 어려운 검찰의 주장

이른바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 검사들은 누리꾼의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을 업무방해·명예훼손죄로 처벌하겠다고 했다. 의사표현일 뿐인 글이 상대방을 공포에 떨게 하는 위력이 있고 업무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은 창조적이긴 하나 납득하기는 어렵다. 광고주 회사가 고소하지도 않았는데 수사에 나서 빈축을 사더니 나중에는 광고주 회사를 찾아가 왜 고소하지 않느냐고 종용했다는 논란까지 일었다.

검찰은 ‘고소 권유도 수사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수사의 단서’가 있어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고, 그 대표적인 것이 ‘고소’라는 것은 검찰 실무의 가장 기본이다. 이 촌극은 전세계 검찰 역사에 ‘친절한 검찰’이라 기록될 만하다.

한국 검찰의 과거 역사는 ‘사건 조작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실질적인 지휘에 따라 억울한 피의자를 기소하는 법 기술자를 자임했고, 군사정권의 안정을 위해 기꺼이 민주 인사를 간첩으로 조작했다. 2002년까지도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를 구타해 사망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사는 검찰을 ‘정권의 개’라고 낙인찍었다. 2008년, 그 ‘정치 검찰’의 부활에 대한 염려가 기우이기를 바란다.

기자명 송호창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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