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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에게는 ‘광복절’이 없다

체감온도가 영하 23℃로 떨어진 혹한에도 스티로폼과 김장 비닐에 의지해 밤을 견디는 이들이 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비롯한 대학생 단체들이 1월 내내 소녀상 곁을 지키고 있다. 계획된 농성은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들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2016년 02월 01일 월요일 제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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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핫팩·떡볶이·캔커피 등이 30분에 한 번씩 쏟아지듯 들어왔다. 한 시민은 찬바람을 맞으며 찬 음료를 마시는 대학생이 안타깝다며 온장고를 선물했다. 1월15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뒤에는 각종 물품이 상자째 쌓여 있었다. 평화나비 소속 한 대학생은 “폭발적인 호응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아쉬울 정도다”라고 말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김샘 대표(24·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4학년)는 핫팩 12개를 온몸 구석구석 붙인 채 동분서주했다. 대학생 겨레하나, 청년독립군, 청년하다 등 8개 청년단체와 당번을 정해 ‘소녀상’을 지켰다. 체감온도가 영하 23℃로 떨어진 혹한에도 커다란 은박 스티로폼과 김장 비닐에 의지해 밤을 견디는 날이 이어졌다. 몇몇 시민이 후원한 간이 텐트는 경찰에 막혔다. 농성은 1월 한 달간 지속할 예정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만든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가 담긴 김씨의 다이어리에는 위안부 관련 일정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평화나비 소속 학생들이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샘 평화나비 대표가 소녀상 옆에 앉아 있다.  
ⓒ시사IN 신선영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평화나비 소속 학생들이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샘 평화나비 대표가 소녀상 옆에 앉아 있다.

평화나비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대학생 동아리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역사나 여성주의 동아리에서 한 챕터로 다루는 정도였다.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담을 그릇이 없었다. 평화나비의 시초가 된 건 2012년 이화나비 콘서트였다. 대학생 참여를 유발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내용을 담았다. 반응이 좋아서 다음 해에 더 큰 규모로 진행했다. 그런데도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쉬웠다. 친구들과 2014년 5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꾸렸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콘서트 도우미 모집에 담당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원자가 몰렸다. 현재 전국 10개 지역에서 450명이 활동한다.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역사·평화·인권·국제정세·정치외교 등 세미나와 견학 등을 한다.

평화나비 콘서트에 위안부 피해자가 참석하나?
할머니들은 건강상 저녁에 열리는 평화나비 콘서트에 참여하기가 힘든 상황인데도 꼭 오신다. 지난해에는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무대에 올랐다. 앉을 자리를 마련했는데, 절대 안 앉으셔서 의아했다. 무대가 끝나고 이유를 물었다. “여기까지 와준 대학생한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정부 관계자를 만나면 무조건 앉는다. 일본 말을 알아도 절대 일본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 분이 시민 앞에서는 경의를 표한다.



지난해 12월31일 주한 일본 대사관 기습 시위를 평화나비가 계획했나?
처음부터 농성이나 기습 시위를 준비한 건 아니다. 12·28 합의 이후 첫 수요집회(12월30일)가 끝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앉아버리자’ 그게 다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루만 농성할 줄 알았다.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얇은 은박지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그날 밤, 농성장에 있던 청년들이 말을 꺼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거냐는 질문을 받을 텐데, 우리가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다음 날 기습 시위를 하게 됐다. 시위대 30여 명 중 평화나비 소속은 10명이었다.

기습 시위에 대한 이견이 없었나?
좀 극단적으로 생각했다. 이대로 끝내버리면 다시는 할머니들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2015년에만 할머니 아홉 명이 숨을 거뒀다. 2014년엔 두 분이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는 박근혜 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원 등이 보낸 화환이 화려했다. 막상 내부에는 조문객이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가족마저 한 명도 없는 곳이 있었다. 자녀가 없는 할머니가 많은 까닭에 상주가 직계가족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였다. 독거노인으로 취급되었다. 조문을 갔다가 텅 빈 빈소를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 이런 현실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니, 생존 피해자를 외롭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나중에 이용수·김복동 할머니를 빈소에서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 텅 빈 장례식장이 겹치면서 절박한 심정이 더해졌다.

연행 후 3일 만에 석방되고 김복동 할머니를 만났는데?
이전에 활동하면서 운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억울했다. 할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한 것 같다. 평상시에 할머니는 “2015년 광복 70주년이라고 홍보하는데, 나는 해방된 적 없다. 진정한 해방, 광복이 됐다면 내 문제도 해결돼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70년이나 기다렸다. 일본 정부보다 한국 정부가 더 야속하다”라고 말하곤 했다.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한국 여경이 나를 끌어냈다. 여경에게 울면서 “할머니 얼굴 어떻게 보려고, 한국인이고 여성이면서, 당신이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소리쳤다. 석방되고 나서 할머니가 나를 보러 왔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셨는데 왈칵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많이 나는 날들이었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오른쪽)가 1월2일 김샘 평화나비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오른쪽)가 1월2일 김샘 평화나비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교과서’ 관련해서도 평화나비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위안부 문제가 심란했다면 국정교과서 문제는 화가 났다. 이를 공론화하는 불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부청사 앞에서 몇몇 청년단체가 농성을 벌이다 대학생을 더 이끌어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2015년 10월12일 교육부의 국정화 계획 발표 직후 대학생 17명이 이순신 동상에 올라가 국정교과서 강행 처리를 규탄하는 긴급 시위를 벌였다. 이때 평화나비 소속 9명이 함께했다. 한국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지 말라고 요구하는데, 한국 정부는 직접 나서서 역사 교육을 후퇴시키려 한다. 책임과 반성을 기억하고 진실을 말하는 역사 교육을 해서 ‘재발 방지’로 나아가야 한다.

‘12·28 합의’ 이후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리라고 보나?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의 쉼터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생활하는 피해자를 찾아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후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은 12·28 합의 결과에 동의하고, 해결 의미로 출연금을 받기로 했다” 같은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며 “정부에 합의하는 할머니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사죄’가 아니라는 거 알겠지만 건강이나 상황이 안 좋으면 마음으로나마 해결되었다고 믿고 떠나고 싶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를 토닥였다.

‘소녀상’ 이전이 거론되고 있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2011년 12월14일, 수요집회 1000회 때 국민 기부금으로 세워졌다. 소녀상은 그냥 그런 동상이 아니라 ‘위안부 운동’의 상징이다.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 소녀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표현한 그림자, 떠난 사람의 빈자리…. 지난해 12월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그러고서 일주일 뒤인 1월4일 “소녀상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을 바꾸는 한국 정부를 믿기 어렵다.

수요집회에 ‘엄마부대’가 떴다.
당황스러웠다. ‘정대협이 할머니를 조종한다더라’ 같은 프레임을 앞세우고 있다. 할머니를 건드리지 못하니까 정대협 등 주변을 공격한다. 할머니를 자기 주관 없는 피동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12·28 합의 이후 찾아온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늙고 못 배웠다고 생각해서 우리의 의견을 무시하는 거냐”라고 호통 쳤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국가 간 협약을 맺으면서 위안부 피해자의 의견 수용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결과에 제3자가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하는 게 화가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머니들은 초연하다. 지난 수십 년간 이보다 더한 일을 겪어온 거다. 할머니는 아시아 여성기금 따위 일들을 겪으면서 ‘분열’과 ‘비난’을 경험했고 이에 굴하지 않았다. “해결됐다고 떠들어봤자 아닌 거 다 밝혀진다.” 25년이나 싸워온 역사에 경외심이 든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5년 열린 평화나비 콘서트.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콘서트로 만난 학생들이 모여 꾸린 프로젝트 동아리다.  
ⓒ연합뉴스
2015년 열린 평화나비 콘서트.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콘서트로 만난 학생들이 모여 꾸린 프로젝트 동아리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을 것 같다.
많은 대학생이 처음에는 ‘할머니가 안쓰럽다, 안타깝다, 불쌍하다’ 같은 시선으로 본다. 하지만 활동이 길어지다 보면 태도가 바뀐다.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소녀’가 아니라 25년간 싸워온 역사 그 자체, 평화운동가, 반전활동가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당사자가 생존해 있는 만큼 직접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세계 도처에 있는 여성·평화·인권 문제를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정립하게 된다. 할머니들이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을 되풀이해 이야기하는 이유가 자기 안위를 위해서만은 아닐 거다. 후세대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으니 그걸 감당하는 게 아닐까.

1월22일 현재 농성 24일째다. 언제까지 농성할 예정인가?
이렇게 지지받는 농성장은 처음 본다. 시민들이 한 시간에 두 번 정도 수십 개의 따뜻한 커피를 사다 주신다. 소녀상에 씌워주라는 털모자가 넘치고, 커플·학부모·자녀가 손잡고 소녀상을 보러 온다. 무슨 활동을 하든지 아무 말 없던 엄마가 이곳까지 왔다(경기도 가평군에서 사는 김씨의 어머니는 이날 밤 10시께 직접 끓인 닭죽 30인분을 들고 왔다. 12·28 합의는 가족의 변화까지 이끌어냈다. 김씨의 어머니는 “이전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딸 세대에게 짐 지웠다. 따뜻한 방에서 잔다는 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일단 1월 한 달간 농성을 멈추지 말자고 결의한 상태다. 지난해 12월31일, 올 1월2일과 4일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에게 경찰은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 출석하지 않으면 강제 구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소환장 통보를 받은 8명 가운데 평화나비 소속 3명이 포함돼 있다(김샘 대표는 1월21일 종로경찰서에 출석해 경찰의 질문 ‘기자회견을 주최한 단체가 어디인가’ ‘사회를 본 자가 누구인가’ 등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올해 평화나비는 어떤 활동을 예정하고 있나?
지금까지 매년 평화나비 콘서트를 해왔는데, 대학생이 좀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컬러런(달리면서 형형색색 가루를 뿌리고 노는) 축제를 기획하려고 한다. 한·일 정부의 10억 엔 출연에 맞서 시민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정의와 기억재단’을 설립했다. 대학생들과 함께 할머니 손을 잡으면서 기금에 동참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뭐가 있을까….
‘위안부 문제’는 역사, 여성, 인권 등 복합적인 성격을 띤다. 이상적으로 바라보면 피해자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피해자에게만 집중하면 본질적인 문제를 잊을 수 있다. 얼마 전 신년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인권·평화의 가치를 세워온 만큼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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