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잠만 잔다는 아이,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어서 토플 공부를 하는 아이, 학군사관 후보생(ROTC)에 지원하기 위해 수험 공부를 다시 시작한 아이 등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개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아이도 있었다. 일을 나선 동기는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다 같았다.

한 아이는 식당에서 하루에 5시간씩 주 5일 홀서빙 일을 했다. “힘들긴 했지만 사회 경험이 쌓인 것 같다”라며 뿌듯해했다. 일하는 동안 쉬는 시간은 없었다고 했다. 노동자가 4시간 이상 일하면 사용자가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자유로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근로기준법 제54조). 시급은 6200원이었다. 아이는 ‘용돈이 꼭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차라리 공부를 하라며 싫어하시기도 해서’ 한 달만 하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모님이 이제부터 용돈은 스스로 벌어 쓰라고 해서 주말에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가 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한다고 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건만 “저도 선물 사오고 싶었는데 일하려고 머리망 사고, 구두 사고, 월급 탄 걸로 가족들 치킨 사주니까 돈이 없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18세 미만의 근로시간은 하루 7시간이다. 근로기준법 제69조)는 내 말에 아이가 되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저 점심시간에 밥 주고 일 안 시켰다고 시급을 빼요. 점심시간이 30분밖에 안 되는데 완전 어이없어요” “아 또, 이틀 일하면 10만원인데 계산해보면 최저시급이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일당으로 받으면 원래 그런 거래요. 맞아요?”

요즘은 아르바이트 노동조건쯤은 학교에서 가르쳐서 졸업시키지 않느냐, 곧 스무 살이니 이런 판단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네 아는 빵집에서 한 달 내내 일하고 나서 “얼마 받을래?” 하는 주인의 말에 ‘아는 어른인데 최저시급대로 다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하며 우물쭈물할 만큼 아이들은 아직 어수룩하다. 자신이 아직 서툴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른으로서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최저시급을 받지 못하더라도 ‘열정페이는 당연하다’고 여길 만큼 순종적이기도 하다. 아직 완전한 어른이 아니기에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저항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당장 어른의 사정으로 이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리고 일도 못하는 애들을 고용해준 게 누군데!”라는 시혜적인 태도인 어른들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박해성 그림

“어차피 다른 아르바이트도 다 똑같아요”

그나마 부모님과 상의해서 부당한 조건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에 보태야 하는 아이들, 입학 후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노동조건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일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아이는 주 6일을 하루 10시간씩 스시 뷔페에서 일했다. 사람이 없을 때 30분 정도 쉰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이 최저시급을 받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초과근무수당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는 또 다른 아이는 3개월간 수습 기간이라서 시간당 4800원을 받는다고 했다. 최저시급의 80%를 계산한 금액이다. 아이는 “대학 가서도 계속하려고 야간으로 구했다”라고 했다. 아이에게 수습 기간은 불법이고, 야간근로수당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지만, “어차피 다른 데도 다 똑같아요. 어쩔 수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이 아이들에게 교육에서 말하는 ‘원칙’은 소용없다는 것을 다시 가르치는 셈이다. 우리는 뭐하러 권리를 가르치고 교육한 걸까.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처음 배운 것이 불합리와 체념이라면 그 아이가 만들어갈 세상도 달라질 리 없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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