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5일부터 9일까지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쇼인 ‘CES’에 다녀왔다. 이 행사는 올해도 각종 기록을 새로이 썼다. 전 세계 3800개 기업이 참가하고 참관객 17만명이 몰려들었다. 기자만 6000명이 왔다.

이번 CES에서는 기술로 인한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고 또 전방위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CES의 주인공 역할을 해온 텔레비전은 4K니 HDR이니 하는 키워드로 관심을 모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반면 무인자동차·전기자동차·가상현실(VR)·드론·스마트홈·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로 혁신이 퍼지고 있고 흥미로운 제품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난해 대기업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은 곳은 스타트업들을 모은 전시장 ‘유레카파크’였다. 이번에 CES 주최사는 유레카파크의 공간을 대폭 늘렸다. 전 세계에서 모인 약 500개 스타트업이 기발하고 발랄한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을 선보였다. 이들의 부스는 비록 3.3㎡(1평) 정도로 작았지만 아이디어의 수준이나 제품의 완성도는 대기업 못지않은 경우도 많았다. CES에서 만난 이찬진 포티스 대표는 “지난해에 비해 스타트업들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아이디어 단계의 시제품에서 이제는 좀 더 다듬어지고 실생활에서 쓸 만한 제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 회사들의 약진이었다. 한 언론은 “프랑스 기업들이 CES를 침공했다”라고 썼을 정도다. CES 전체로는 프랑스 회사가 약 200곳 나왔는데 그중 유레카파크에 나온 스타트업이 128개나 되었다. 전체 스타트업에 대비해서도 30%가량 차지했다. 우리로 치면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같은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 프랑스’는 35개 사의 CES 진출을 지원했다. 이들은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을 그려넣은 ‘라프렌치 테크’라는 로고를 부스에 부착해 통일성을 주었다. 그 덕분에 참관객들에게 “프랑스 기업들이 정말 많이 왔다”라는 인상을 주었다.

ⓒ임정욱 제공CES에 참여한 프랑스 기업들은 부스마다 붙인 ‘라프렌치 테크(수탉 그림)’ 로고로 통일성을 주었다.

알람시계에서 커피와 토스트 냄새가 난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질도 높았다. 토스트 냄새, 커피 냄새 같은 향기로 잠을 깨워주는 알람시계를 만든 센서웨이크 등, 기발한 사물인터넷 제품을 내놓은 프랑스 스타트업들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또 프랑스 중견 기업 중에도 45분간 비행하는 글라이더형 드론을 내놓은 패럿이나 인공지능형 가정 감시카메라 프리센스를 내놓은 넷앳모 등이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에 이어 CES 현장을 찾아 기업들을 격려하고 홍보 활동에 나선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은 “프랑스는 혁신 국가다. 앙트러프러너(창업가)라는 말이 원래 프랑스어라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중국의 기세도 여전했다. 지난해 중국 기업들은 거의 900개 사가 CES에 나왔는데, 올해도 규모가 비슷해 보였다. 하이얼·화웨이 같은 대기업부터 DJI 같은 급성장하는 신생 기업, 스타트업,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드는 중소기업들까지, 자동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나왔다. 이번 CES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슈퍼 전기차를 내놓은 패러데이퓨처나 사람이 타는 무인 드론을 내놓은 이항(EHang) 같은 곳도 중국 회사다.

CES에서 보이는 빠른 변화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삼성·LG·현대(기아차)를 제외하면 느끼기 어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래 신성장 산업이 될 드론·스마트홈·가상현실·IoT 등 분야에서 한국의 미래를 끌고 갈 신진 기업이 잘 보이지 않는 문제는 이번 CES에서도 여전했다. 한국의 5년, 10년 뒤를 떠받칠 새로운 기술기업 육성이 시급하다.

기자명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