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 하는 일이라 취미라 말하기 민망한 것들이 있다. ‘독서’라거나 ‘영화 감상’ ‘음악 감상’처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딱히 내세울 만한 취미가 없어서 급하게 둘러댔구나’ 하는 의심을 사기 딱 좋은 유희들 말이다. 이번 세기엔 ‘사진 찍기’가 이 목록에 합류했다.

한때는 사진을 근사하게 찍으려면 심도니 조리개니 초점이니 화이트 발란스니 하는 복잡한 용어들을 익혀야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후(後)보정 앱으로 작품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 그나마 DSLR이나 미러리스가 흥하던 시절엔 이런 개념이 중요했는데, 스마트폰 업계의 카메라 경쟁이 심해지면서 그런 건 몰라도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발전 속도가 눈부신 만큼 속도에 발맞춰 걷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법. 지금도 굳이 아날로그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어서도, 스마트폰으로는 사진 찍기를 거부하는 러다이트(신기술 반대자)족이어서도 아니다. 그냥 아날로그 카메라 하나를 더 들고 다니며, 이젠 오프라인에서 파는 곳도 없어서 인터넷에서 주문해야 하는 35㎜ 필름을 갈아 끼워가며 사진을 찍을 뿐이다. 왜 굳이 이러느냐고? 글쎄, 확실한 건 ‘힙스터’처럼 보이고 싶어서는 아니다. 누군가는 필름을 감는 손맛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따뜻한 감성을 말하지만, 사용자 시각에서 아날로그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스마트폰을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사진을 확인하는 시점’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횟수’다. 필름은 디지털과는 달라서 한번 찍으면 무를 수 없다. 필름 값과 현상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부담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셔터를 누르기 전 제한된 필름 안에서 어떤 모습을 담을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현상하기 전에는 방금 찍은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할 도리도 없으니, 더 신중하게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할 때까지는 궁금증을 유보해야 한다.

디지털 카메라·스마트폰 시대에 아날로그 카메라(사진)로 사진 찍는 걸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서른여섯 장 필름으로 사진 찍는 즐거움

당연히 느리고 비싼 데다가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런데 본디 취미라는 단어의 뜻이 그런 거 아닌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다시 말해 진행 속도나 결과의 효용성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를 도락 삼는 일 말이다. 대부분의 취미가 그렇다. 질 좋은 생선을 먹고 싶으면 산지 직배송으로 주문하는 게 빠르고, 완성된 건담을 갖고 싶으면 완제품 피규어를 사는 게 확률적으로 더 깔끔하다. 그런데 왜 우린 하지도 못하는 바다낚시를 간다고 주말을 포기하고 어설픈 니퍼질로 건프라 옆구리에 흠집을 내는 걸까? 그 비효율적인 과정 자체를, 기다림을, 번거로움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미지수의 영역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으로 잔뜩 찍어둔 사진을 집에 가서 일일이 태그 달아가며 파일을 정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SNS에 인증샷 올리고, 나머지 파일들은 컴퓨터 하드 구석에 처박아둔 채 잊어버리는 게 다반사 아닌가. 아날로그의 불편함과 현상 비용을 감내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서른여섯 장을 다 찍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현상해서 나온 사진을 본 순간 시차를 두고 다시 호명된다. 아, 맞다. 내가 저 날 사진을 찍었지. 디지털이 담보한 동시성과 효율성을 포기한 대가로, 우리는 사진을 찍던 순간을 다시 한번 기억할 기회를 얻는다.

아날로그 카메라는 생각만큼 비싸지는 않다. 라이카 같은 제품을 알아본다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지만, 취미 삼아 찍을 입문용 제품을 마련할 거라면 야시카나 니콘, 펜탁스, 캐논, 미놀타, 롤라이 같은 브랜드의 중고 클래식 카메라를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요즘엔 이쪽에 흥미를 지닌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걸 눈치 채고 그것만 따로 취급하는 전문 인터넷 셀러도 많으니 굳이 남대문까지 발품을 팔지 않아도 괜찮다.

조리개니 초점이니 렌즈 탈착이니 다 잘 모르겠고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아날로그 카메라로 사진은 찍어보고 싶다면 ‘로모’만 한 게 없다. 사용법은 무척이나 간단하고 가격도 20만원대 후반인 데다, 무엇보다 중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신품이 생산되고 있다. 구미가 당기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나처럼 사진으로 돈 낭비하는 길에 접어든 것이다. 사진을 찍어놓고는 어떻게 나왔을지 며칠째 궁금해하는 비효율의 세계, 하지만 모두가 하는 일은 아니어서 비로소 취미라 부르기 부끄럽지 않은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한다.

 

 

박스 기사

 

들어는 봤나? ‘빈자의 라이카’라고

잘 모르는 분야에 처음부터 수십만원을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불안한 게 당연지사. 이 분야의 대표주자인 로모(사진)도 20만원대 후반이니 심적인 진입장벽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래서 골라봤다. 장난감 같은 놈부터 ‘빈자의 라이카’라는 별명이 붙은 녀석까지, 10만원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카메라들이다.

컨스트럭터 슈퍼 세트

사 진도 좋아하고 프라모델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목하시라. 컨스트럭터는 ‘직접 조립해서 사용하는 35㎜ SLR(일안 반사식 사진기)’을 표방한다. 박스를 개봉하면 프라모델처럼 플라스틱 러너에 부품이 붙어 있는 상태의 컨스트럭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조립하면 된다. 유튜브에 조립 과정을 설명하는 동영상도 있으니 따라 해보자. 카메라 본체와 매크로렌즈 2개, 확대 굴뚝 후드까지 세트로 6만9000원에 판매 중이다.

야시카 일렉트로 35 GTN

요 즘 사람들에게는 야시카라는 브랜드가 낯설지 모르지만,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많이들 사용하던 브랜드다. 가격에 비해 보디의 내구성이나 렌즈의 색감이 훌륭해 혹자는 ‘빈자의 라이카’라고도 부른다. 어디까지나 ‘빈자의’ 라이카다. 일렉트로 35는 전자셔터로 노출을 제어하는 오토매틱 노출이 가능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니, 대충 언젯적 물건인지 짐작이 가시는지? 조리개 값 조정, 수동 초점 제어 등의 기능이 있어서 토이 카메라에서 한 단계 올라가고 싶을 때 입문용으로 사용하기 좋은 기종이다. 정비가 잘 되어 작동 가능한 중고품들은 인터넷에서 10만원대 초반으로 구할 수 있다.

홀가 135

야 시카 일렉트로 35가 ‘빈자의 라이카’라면 홀가는 ‘빈자의 로모’라는 이야기를 듣는 카메라다.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를 눈짐작으로 재어 초점을 설정하는 목측식 카메라라는 점도 비슷하고, 사진 결과물이 또렷하거나 선명하지 않아 ‘몽환적’이라고 우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런데 기능은 로모보다 더 충실하다. 35㎜ 필름용 모델인 135는 두 단계에 불과하지만 조리개 조작도 가능하고, B셔터 기능으로 찍는 이의 의도만큼 필름을 빛에 더 오래 노출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신품이 6만원대 초반이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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