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울의 유명 대학교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소변기 위에 “죽고 싶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같은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와 학생상담센터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전이면 “독재 정권 타도”나 “민중 권력 쟁취” 따위 정치 구호가 붙어 있을 자리였다. 그 학교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더니 학교에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중의 하나가 학생들의 자살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 문제라고 했다.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강의실 안팎에서 정신과 질환을 앓는 학생들을 만나는 횟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많아지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려서 새벽에 놀라 연락을 취한 적도 있었다. 우울증을 앓는 경우는 이제 경증에 가깝다. 메일이나 문자로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힘들다는 호소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친하게 지내는 강사는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과 뒤풀이를 하는 중에 공황발작이 와서 황급히 응급실로 뛰어간 적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만이 아니다. 전국을 다니며 만나는 교사들도 정신적 질환을 호소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가 알아서 잘 대처하는 경우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알려지면 학교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쉬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도 정신과 치료는 개인의 의지 문제라고 생각해서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방치하다가 더 큰 사태에 직면하기도 한다.

ⓒ박해성 그림

우울로 이어지는 ‘범생이’들의 만능감

정신과 질환을 앓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최근에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사람 양쪽 모두에서 특징적인 유형이 있다는 것을 하지현 교수(건국대 정신과)와 대담을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1970~1980년대에 태어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만능감’에서 기인하는 경우다. 이들이 느끼는 만능감은 “내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그런 유의 만능감이라기보다는 내가 노력하고 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하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자기가 상대를 이렇게 좋아하고 잘해주는데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느냐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만능감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강의실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본다. 특히 ‘범생이’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체로 교수가 하라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잘 따라온다. 수업 시간엔 자기와 눈을 마주치기를 바라고 질문과 응답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교수의 반응이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를 경우에는 참지를 못한다. 자기가 교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노력했고 글도 교수에게 ‘맞춤형’으로 썼는데 왜 높게 평가를 해주지 않느냐고 말한다.

가르치는 자 역시 마찬가지다. 교단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내가 열심히 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면 그들이 나를 잘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생들이 자기를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되는 일이 있고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많은 경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절망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같은 일이 교사나 모범생 등 체제에 잘 적응한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면 이는 의미심장하다. 지금껏 이들은 성과 사회의 주체로서 자기가 한 만큼 늘 성과를 거두었고 그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 결과 만사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상황을 이해하지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을 만난 자신에 대해서는 자책하면서 우울해하고, 반면 상대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는 분노를 터트리며, 피해망상에 젖거나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이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망가뜨리고 있다.

기자명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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