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개되고 있는 정치의 양상을 보면, 어떻게 하면 국민을 잘살게 할 것인가 하는 정책 경쟁을 떠나, 사상(이념)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다. 역사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꾸려는 정권의 방침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것은 지난 역사의 자의적인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사상적 지표와도 관계되므로 대표적인 사상전이라 할 것이다.

또한 한 공안검사 출신 공직자가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사상몰이 발언을 한 것도 수상쩍다. 그 발언 자체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큰 문제지만, 그러한 발언을 한 공직자에 대해 정권에서 아무런 인사 조처를 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정권이 속으로 바라는 발언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거의 돈이 안 들고 손쉬운 방법인 사상전을 시작했다는 조짐은 전부터 볼 수 있었다. 노동운동에 대해 적의에 찬 탄압을 한 데서 시작해, 통합진보당의 해산 사태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사상전의 전개 양상이 뚜렷이 느껴졌다.

우리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사상전이 전개되면 우파, 극우가 유리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파는 이제까지 그 편리한 수단을 자주자주 사용해왔다. 이명박 정권 때는 좀 잠잠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 들어 바람몰이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한 맺힌 과거 기억이 작용한 것일까. 박근혜이즘이라 할 만하다. 사상전에 대한 반격은 마치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다. 그러나 느리지만 줄기찰 것이다. 사상전이 회오리처럼 휩쓸고 간 뒤에 남는 것은 황폐한 정치풍토뿐일 것이다.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독일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들이 강요한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조건들이 나치즘의 대두에 불을 질렀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 대륙의 적화가 매카시즘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우리나라 극우 진영의 사상몰이에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남북이 각각 별도의 자기 완결적인 법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흡수통일이 아닌 다른 통일 방안을 꺼냈다가는 법망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남북관계의 법리를 말할 때 합헌성을 내세우지 말고 합민족성(合民族性)이라는 틀을 적용하는 것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중 간 외교에서 미묘하고도 어려운 단계에 처해 있다. 미국은 우선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우리에게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어서 참으로 난감하다. 또한 군사적 해외 진출이 가능하도록 법제를 갖춘 일본은 북한이 한국의 영토 밖이라 한국 동의 없이 군사 개입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리 민족에게 닥칠지 모를 큰 위험을 느끼게 한다. 구한말의 상황을 회상케 하기도 한다.

이럴 때 여와 야는 마음을 합쳐 그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지혜롭게 대처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외 정책에서 여와 야가 어긋난다면 실패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러한 국제적 상황과 우리 국내 사상전의 전개 양상은 전혀 맞지 않는다.

어렵더라도 민생 문제에 힘을 쏟고 고심해야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바뀌어야 할 때이다. 유아독존식으로 경직되어가는 통치 스타일을 접을 때다. 물론 박 대통령의 통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금까지는 친인척 관리에 허술함이 드러난 게 없었다. 철저하다. 공직자의 기강도 추상같이 잡고 있다. 물론 KF-X 사업 같은 데서 슬슬 허점이 드러나고 있지만 말이다. 여당을 이끄는 고삐도 야무지게 잡고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무리하게 주저앉혔고, 김무성 당 대표는 습복(慴服)하고 있다. 다만 당내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부분이다. 강하기만 하면 부러진다. 유연함이 함께 있어야 정말 강한 것이다. 이제 국민도 슬슬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여백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런 신축자재의 통치가 정말 강한 통치이다. 임기 5년제로 영구 집권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바라건대, 민생 문제에서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것으로만 보이는 사상전을 펴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은 이기는 듯하지만 결국 불모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민생문제에 힘을 쏟고 고심해야 한다.

여야는 국제적 어려움을 당하여 민족의 앞날을 현명하게 개척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건전한 이의자(異意者)들을 포용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너무 완벽하게 고삐를 쥐려 한 나머지 결국 좌절한 게 아닌가.

기자명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