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국정감사에서 망언을 쏟아냈다. 색깔론이 핵심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칭하는가 하면 사법부가 좌편향되어 있다는 ‘소신’을 거침없이 밝혔다. 극단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쏟아내면서 고 이사장은 국감 최대 이슈메이커가 됐다. 국무부에 공산당원들이 있다며 미국 정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카시 상원의원에 빗대 ‘고카시’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고 이사장은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공영방송 관리감독 기구의 수장 자격으로 국감에 나와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방문진은 MBC의 대주주로서 사장 임명권과 해임권을 가진다.

고 이사장의 발언은 돌발적인 말실수가 아니다. 공안검사에서 보수 단체 임원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0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서 남긴 어록을 바탕으로 그를 들여다봤다.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10월6일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고 이사장은 “민중민주주의자다.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답했다.
 

ⓒ연합뉴스10월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극단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쏟아냈다(위). 그는 MBC의 대주주로서 사장 임명권과 해임권을 가진 방문진의 이사장 자격으로 출석했다.

발단은 2013년 1월 있었던 보수단체연합 신년하례회였다. 고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 당선은 대한민국 적화를 막기 위함이라며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그 근거로 공안검사 시절 수사했던 ‘부림 사건’을 들었다. 부림 사건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공안당국이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던 대표적인 공안 사건이다. 그러나 고 이사장은 부림 사건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이었고, 당시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부림 사건 변호를 맡지 않았다. 고 이사장은 2011년 보수 단체 강연에서 “노무현 정권이 신분을 숨기고 정권을 잡았다. 거의 적화되기 전에 간신히 막아진 거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 이사장은 국감에서 “(문 대표의 사상을) 알면서 찍었으면 거기 동조한 사람”이라며 지지자까지 이적행위자라고 몰아붙였다. 문 대표는 9월16일 고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손해배상 1억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고 이사장의 왜곡된 역사 인식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10월2일 야당 의원이 “친일파 청산에 반대하느냐”라고 묻자 그는 “친일파 문제는 세대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는 “형식은 쿠데타인데, 정신적으론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국사학자 중 90% 이상이 좌편향돼 있다”라는 색깔론도 펼쳤다.

반면 “친북(반국가)인명사전은 대한민국이 좌경화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편찬됐다”라며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친북반국가인명사전’은 2010년 보수 단체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주도해 100명을 꼽은 명단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고 이사장은 방문진 이사장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이 단체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고 이사장은 2008년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 상임위원으로 있으면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이적단체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초·중·고교에 침투해야 한다는 혁명 전략에 따라 전교조가 출범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가 탄생할 때부터 이적단체임을 확신해왔다. (중략) 운동권의 서적, 팸플릿 등을 공부한 덕분에 그들의 생각을 훤히 꿰뚫을 수 있었다”(〈시사IN〉 제59호 “참교육은 민중혁명 도구일 뿐” 참조). 검찰은 8년째 ‘전교조 이적단체 고발’사건에 대해 기소 혹은 불기소 처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 있다”

고 이사장은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10월6일 야당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해 2월, 보수 성향의 1인 미디어 〈참깨방송〉과 한 인터뷰를 보면 이 발언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고 이사장은 ‘1964년 김일성이 공작원들에게 사법고시를 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하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내비쳤다. “데모로 내몰지 말고 공부를 시켜서 시험을 보게 해라. 64년부터 추진했으니까 지금 50년 된 거 아닌가.”
 

ⓒ시사IN 조남진2009년 11월26일 ‘친북반국가인명사전’ 관련 기자회견을 한 고영주 당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 보수 단체 회원들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명단에 넣어야 한다’며 항의했다(위).

재심 사건 무죄판결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부림 사건 피해자를 대놓고 비난했다.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지금 영화(〈변호인〉)를 통해 고문을 주장하고. 이게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지난해 9월 대법원이 33년 만에 부림 사건 피해자 5명에게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는 사법부가 좌경화됐다며 자신의 과거 발언을 꺾지 않았다.

이번 국감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림 사건 수사 당시 불법 구금에 대해 추궁하자 고 이사장은 “당사자들 동의하에 여관 같은 데에서 수사를 하고 그랬을 거다. 공안 사건 양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편법이 사용됐다”라고 말했다. 공안검사 시절 인권 탄압에 대해 ‘당사자 동의’를 내세웠다. 피해자의 기억은 다르다.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기자는 1985년 국가보안법 혐의로 고 이사장에게 수사를 받았다. 김 기자는 여관 합숙 수사는 무조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에서 “당사자 동의가 있었는데도 경찰들이 여관방에서 제 손목에 수갑을 채웠을까요? 당사자인 제가 동의를 했는데도 제 몸에서 옷을 모두 벗기고 그것을 자기들 등짝에 깔았을까요?”라고 적었다. 고 이사장의 반성 없는 태도에 대해 김 기자는 〈시사IN〉과의 전화통화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나. 그 나이까지 명예, 권력을 놓지 못하고 추종하는 모습이 오히려 불쌍해 보인다”라고 답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까지 나섰다. 10월6일 “법조인들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총회에서 고 이사장에 대한 해임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10월8일 열린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야당 이사들은 고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같은 날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야당 추천 김재홍 부위원장이 ‘해임’ 또는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최성준 방통위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위원들은 고 이사장의 국감장 발언은 업무와 직결되지 않는다며 감싸기에 나섰다. 이사장을 비롯한 방문진 이사는 방통위에서 선임하고, 방통위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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