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년 전이다. 부산에 국제영화제를 새로 만들었다며 당시 부산시장과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작은 음식점에서의 간담회는 소탈했으나 열정이 넘쳤다. 

처음부터 영화제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군더더기가 없었다. 해운대 모래밭과 포장마차에서는 관객과 어울려 밤새 술을 먹는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화를 위한 축제라는 느낌이 오롯했다.

정치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촌스러운 이유지만, 그랬다. 참석한 정치인을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주최 측과 조용히 ‘하객’ 역할에 머물러준 정치인이 모두 상찬받았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가버렸다고 해서 말이 많다. 영화제 측은 사태 초기 ‘사전 통보 없이 개막식에 참석한 일부 정치인들이 우왕좌왕하며 입장을 지연해 25분가량 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3당 대선 후보가 모두 참석했다.

문제가 비화하자 주최 측은 엔리오 모레코네 측 편지 전문을 공개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해명의 요지는 의전 소홀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엔리오 모레코네의 전언은 더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협의의 의전이 문제가 아니라 영화제 꼴이 그게 뭐냐, 는 질타에  다름아니어서다. 그는 스타에 환호하느라 소란스러운 개막식, 엉뚱한 곳에 몰린 언론과 팬들의 관심에 생경함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인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축제였던 부산영화제에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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