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김애란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했다. 또 혹자는 말한다. 배우 문근영이 영원히 국민 여동생인 것처럼, 20대 후반인 그도 여전히 ‘애란이’라고. 그를 둘러싼 말들은, 그렇게 온통 기특하다는 말투성이다.  

윗세대뿐 아니다. 젊은 세대의 환호성도 그에 못지않다. 얼마 전 그녀가 시인 황병승과 함께 진행한 낭독의 밤은, 예상보다 많은 독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참석자 일부가 행사장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그녀가 나타날 때면 “어머, 김애란이닷”이라고 알아보는 이들이 심심치 않고, 그때마다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곤 한다.

김애란의 두 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인기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다시, 김애란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광호에 따르면 그녀의 글은 입사(入社)라는 성인식을 끊임없이 유예당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바치는 애틋한 송가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애란의 소설 속에는 많은 일이 '방'을 둘러싸고 벌어지지만, 그는 1990년대 여성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방을 사회적 유폐와 1인칭 내면성의 상징으로 전경화하지 않는다. 그 방은 외통수의 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젊은 세대의 성인식을 유예하는 이 사회 축소판으로서의 상징에 머무르지 않는다.

위안받았다는 독자 때문에 작가가 위안받다

김애란의 소설 속에서는 많은 일이 ‘방’을 둘러싸고 벌어지지만, 그는 1990년대 여성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방을 사회적 유폐와 1인칭 내면성의 상징으로 전경화하지 않는다. 그 방은 외통수의 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젊은 세대의 성인식을 유예하는 이 사회 축소판으로서의 방도 아니다. 

〈침이 고인다〉에 수록된 단편 8편을 읽고 나면, 흡사 김애란의 실제 가족이 그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떤 가족’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예를 들면 그녀의 언니는 여전히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책없는 낙천성과 소심함으로 주변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 김애란은 번역, 커피숍 서빙, 화장품 회사 홍보직, 잡지 교열, 논술 첨삭, 영어 과외따위 아르바이트를 두루 섭렵했으나 여전히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 것이다(〈기도〉).  

그런 그녀의 든든한 ‘빽’이었던 어머니, 평생 칼 한 자루 옆에 찬 채 만두를 빚고 칼국수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도모하던 그 어머니는, 혈압 때문에 부엌에서 음식 간을 보다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만다(〈칼자국〉). 그 어머니는 딸을 위해 피아노를 사서, 가게와 주택을 겸하던 만두 가게에 들여놓던, 억척스러우면서도 최소한의 허영을 포기하지 않았던 바로 그 어머니일 것이다(〈도도한 생활〉).

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그녀의 단편들은, 활자가 아닌 영상이었다면, 또 소설이라는 산문이 아니었다면 설명하기가 난감했을 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그녀의 문장은, 정말 무서운 것은 도발이 아니라 응시가 아닐까 생각게 한다. 모든 것을 단박에 알아채는 민첩함과 따뜻함, 거기에 유머까지 갖춘다. 

그 시선에 포착된, 한없이 약해서 한없이 예민해진 사람들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예를 들면 자신이 묵는 고시원에 여동생을 데리고 간 언니에 대한 묘사를 보라. 언니는 말한다. “나, 처음에 저거 보고 반했잖아.” 언니는 인조 잔디 위로 쫑쫑 솟아 있는 플라스틱으로 된 조그만 제비꽃을 가리킨다. 어이가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정말 여학생을 고려해서 만든 집인가 봐”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그 고시원의 게시판에 붙은 이런 메모도 보여준다. ‘통행 시 뒤꿈치를 들고 다닙시다. 주인 백.’ 혹은 ‘제 지갑 가져가신 분, 죽어버리세요.’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노동부의 ‘대학생 취업 경로 설문 조사’에 임한 주인공의 태도를 보자. ‘50대 특유의 딱딱함을 풍기고 있지만, 왠지 평생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살아왔을 것 같은 인상의 남자’를 보고 나, 서인영은 생각한다. ‘노동부라지만 이 아저씨도 분명 ‘알바생’이겠지. 이 리서치 한 건당 얼마를 받을까. 뭔가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런 내 시선이 어쭙잖은 것 같아 부끄럽다.’ 

그의 글에 공명한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김애란은 〈침이 고인다〉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인 ‘작가의 말’을 통해 독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내게 위안받았다고 말해준 독자, 이름모를 당신. 책 뒤에 붙은 이 한 바닥을 빌려 말하니 나도, 진심으로 당신에게 위안받았다”라고.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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