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시 원서접수 철이다. 예체능 실기로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을 논외로 하면, 학생들이 지원 가능한 전형에는 학생부 교과·학생부 종합·논술 전형이 있다. 하지만 모의고사에서 한 과목 1등급을 받는 학생들이 못해도 전교생의 10%를 차지하는 학교의 재학생들이 수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내는 까닭이다.

“대학 탐방에서 만난 지방 애는 정시가 3등급인데, 내신이 1.3등급(교과목 평균을 내면 1.1~1.7까지는 보통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이라 저랑 같은 대학을 지원한대요. 이게 말이 돼요?” “논술학원에서 다른 학교 애들을 만났거든요? 모의고사 두 과목 합이 5등급이라는데 최저만 겨우 맞춘 거잖아요. 우리는 이렇게 아등바등 내신 치르고 정시 챙기며 생고생해도 수시 떨어지는데 걔네가 더 좋은 대학 쓴다니까 짜증나요.”

올해 ‘in서울’ 대학의 수시 모집 인원은 70%에 달한다. 정시로 들어갈 수 있는 폭이 줄어든 만큼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크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최상위권 아이들의 두꺼운 벽에 막혀 내신 점수도 그만그만하고 정시 등급도 애매해진 아이가, 내신 점수를 잘 관리하면서 최저 등급만 맞춰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를 만났으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아이들의 날선 발언은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번지기도 한다. “어쨌든 정시 등급이 저보다 낮잖아요?” “‘수시충들’ 덕분에 저희는 수능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는 거죠.”
 

ⓒ박해성 그림

‘남이 기울인 노력의 양을 네가 함부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봐야 당장 자신의 상황이 답답하고 초조한 아이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애가 자기보다 좋은 것을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수시 모집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일들은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하게 만든다. 등급이 낮다는 것이 노력을 덜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부으며 만들어낸 너의 점수와, 다시 추가로 자원을 투입해 논술과 자기소개서 준비를 할 수 있는 너의 현재가 누군가에게는 노력으로도 따라올 수 없는 격차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가르쳐주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아이에게는 ‘그들’을 깔보는 근거일 뿐이다.

아이들은 수능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고, ‘수시충’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선을 긋는다. ‘다름’과 어우러질 가능성은 좀 더 줄어든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수능 등급이 사람의 급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려주고 싶다. 두 과목의 합이 5등급이어도 그 사람이 5등급짜리 사람은 아니며, ‘충’이라는 말을 붙여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논술·면접·자소서 등 챙길 것이 많은 만큼 수시 전형이 오히려 사교육을 많이 받는 애들에게 유리하다는 말들이 있다. 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진학 성적을 살펴보면 성적으로 서열화되어온 기존 대학은 이 제도 덕분에 다양한 성장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함께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아이들이 향후에 만나게 될 사회 역시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입시 전형의 다양화는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학벌 하나 획득하기 위해 아등바등 보낸 3년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지균충’ ‘기균충’이라는 용어만 봐도 그렇다. 지역균형 전형, 기회균등 선발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전형은 애초에 정원 쿼터가 다르고, 극소수밖에 들어갈 수 없다. 그들만의 치열한 경쟁이 있지만 그 노력은 용인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더 열심히 살았다고 믿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가 그들을 향하는 것이다.

‘차라리 정시만으로 대학 가는 게 낫다’는 아이들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학벌 하나를 획득하기 위해 아등바등 3년을 살아온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보이는 적대감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교육의 영향력이 센 지역에서만 높은 학벌을 독점할 수도 없다. 이 당위성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수시 모집 정원 확대에 대한 논란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일각에서는 가진 애들이 더 대학을 잘 가게 하는 제도라고 비난하지만, 막상 다 가진 애들도 수시 등급에서 밀린다고 벌벌 떨며 수시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한몫 보태는 지점 말이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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