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정년을 맞은 것을 기념해 30명쯤 되는 학자들이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라는 대중용 논문집을 냈다. 이정우 교수는 불평등 문제를 학문의 주제로 삼아 계속 매달려왔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불평등의 주된 원인으로 토지의 편중된 소유와 토지 가격의 급상승 그리고 노동조합의 약체화로 인한 노동자 권익 옹호의 부족 등 두 가지를 들고 정부의 복지정책 미비를 지적해왔다.

한국은 땅값이 매우 비싼 나라 중 하나다. 부동산이 전체 부의 90%까지 된다고 한다(박노자 교수는 최근 글에서 상위 1%가 개인 소유 땅의 50% 이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토지 보유세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땅부자들의 저항이 여간 완강한 게 아니다. 또한 한국의 노조는 조직률이 10%선을 맴도는 데다 전반적으로 약체다. 한국만큼 비정규직이 많은 나라도 없다. 자본의 압도적 우위에서 노동분배율은 하락하고 있다.

복지를 말하지만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2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조세부담률이 50% 내외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 없는 복지 운운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이 복지 지출 최하위라는 보도가 나온다.

1980년대 초에 나는 미국 콜로라도 주 아스펜에서 아스펜 인문연구소가 주최한 ‘정의와 사회’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 교수도 아주 젊은 나이에 참석했는데, 주로 법조인들과 마치 법률 논쟁을 하듯 의견을 나누었다. 세미나에서 나는 한국에서 정의 문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불균등한 토지 소유와 토지 가격의 급등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리고 토지 가격의 상승은 사회적 활용의 증가에 따른 것이므로 사회에 귀속되는 세금으로 흡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쑨원의 ‘삼민주의’에도 그런 주장이 나와 있다. 이정우 교수와 같은 생각인데, 미국 사람들에게는 별로인 모양이었다.

논문집에 기고한 최장집 교수는 청년실업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그 조직화를 강조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유연화되고 있다”라고 그는 보았다. 노동정치를 연구해온 학자의 중요한 지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 정부 측에서는 ‘노동개혁’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핵심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제도적 보호장치를 허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제까지 불어온 신자유주의 바람이 뒤늦게 노조까지 흔들려 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명분은 정규직의 과보호를 줄여 비정규직을 돕고, 청년실업자들의 취업을 늘리자는 것인데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그 문제를 수량화해서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지금쯤은 정규직의 몫을 얼마만큼 줄여 비정규직의 몫을 늘리고, 청년실업자를 얼마쯤 구제한다는 윤곽을 말하는 수치는 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경제가 답보하고 있으니 노조를 속죄양으로 삼을 심산인가

지금 느낌으로는 정규직의 보호장치를 허물어뜨려 그중 사자 몫은 기업 측이 챙기고, 비정규직에는 토끼 몫, 청년실업자들에게는 다람쥐 몫 정도를 줄 것만 같다. 김낙년 교수(동국대 경제학과)의 연구 결과가 있다. 2000~2012년 소득계층 하위 10%의 평균 실질소득은 6.2% 감소했으며, 12년 동안 전체 평균소득의 실질 증가는 9.9%에 그쳤으나 상위 1%의 평균 실질소득은 39.3%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대로의 이른바 ‘노동개혁’은 그러한 흐름을 심화시키기만 할 것 같다.

최근에 여당의 대표가 막말을 쏟아놓아 말썽이 되었다. 일부 노조의 파업 때 강경 행태를 지적하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답보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편리하게 노조를 속죄양의 하나로 삼을 심산인가.

논문집에서 정치평론가 박상훈 박사는 “한국 정치가 점점 더 중산층 편향적이고 하층 배제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노동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경제를 강화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여하간 야당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이제 야당도 국회에서 ‘노동개혁’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두고 볼 일이다. 그들이 아직도 얼마나 야당성을 갖고 있는가를.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야당이 걱정스럽다.

기자명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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