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뜨겁게 보냈다. 대지를 뜨겁게 달군 폭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릴케처럼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었다고나 할까?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동네 야산이나 천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즐겼다. 매일 거의 같은 길을 걸었지만 늘 다른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는 습성이 생기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가장 익숙한 존재는 학생이다. 익숙해지는 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익숙해짐으로써 감동이 옅어지는 건 문제다. 만나도 즐거움이 없으니 엄청난 마음의 손실인 셈이다. 다행히도 나는 어제 본 아이를 오늘 봐도 즐거울 때가 많다. 그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대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그러다 느닷없이 변덕이 생겨 모든 것이 생기를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말이다.

방학 중에 부산에서 ‘세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세 여자의 직업은 교사다. 그럼에도 세 여자라고 명명한 것은 그들이 문집 형태로 만든 책의 제목이 〈세 여자, 교육을 만나다〉이기 때문이다. 세 교사는 이태 전에 ‘해운결의’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자못 비장(?)하다. “2013년, ‘너무도 아닌’ 상황이 발생하여 교육계가 크게 어지러운 시국이라. 이 세 여자는 비록 성은 다르나 오로지 ‘어쨌든 아이들이 좋다’는 결의로 떨치고 일어났으니 비록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날 순 없었으나 다만, 함께 교육적 이상을 지키고 실현해 나가길 바라노라.”
 

ⓒ박해성 그림

한 학교에서 근무하던 세 여자는 지금은 각자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서 떨어져 지낸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주제로 교육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글을 쓰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실천 사례들을 나누고, 방학 때는 여러 책의 저자를 찾아 교육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올해는 내가 세 여자에게 간택(?)되는 행운을 안았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세 여자의 교단 일기

그날 우리가 만나 뜨겁게 나눈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었다. ‘너무도 아닌’ 상황이 발생하면 최종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 될 터이니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선물로 받은 〈세 여자, 교육을 말하다〉 창간호를 읽다가 무언가 확연히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할 학생들이 정작 교육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향한 교사의 눈길도 마치 익숙한 사물을 바라보듯 생기와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다. 세 여자가 쓴 교단 일기에는 이러한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다.

“대회 나가면 반드시 상을 타야 한다.” 노래하는 아이들을 모아 처음으로 토요스쿨을 시작하던 날, 교감 선생님께서 음악실에 들어오셔서 참 따뜻한(?) 말을 해주셨다. 교감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아이들과 눈을 하나씩 맞추며 이야기했다. “상 안 타도 된다.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생각은 다르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상을 탈 수도 있지만, 상을 목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결코 감동을 맛볼 수 없다. 나는 너희가 상보다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강 교사)”

나에게 세 여자를 대표해서 연락을 해온 강 교사는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녀가 스승의 날 ‘학교 밖’ 아이들을 생각하며 쓴 글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보겠다고 찾아왔다.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는 일이었다.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떠올릴 만한 교사로 남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즈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학교를 떠난 6만명의 아이들에게, 오늘은 정말 아픈 날이었겠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세 여자의 교육 여행은 어쩌면 익숙해지려는 것들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도 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조만간 부산행을 감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내가 독자로서 책의 저자들을 찾아가는 여행이 되겠지만 말이다.

기자명 안준철 (순천 효산고 교사·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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