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사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학원을 그만두기란 쉽지 않다. 무턱대고 전화를 피할 수만도 없다. 교육 서비스의 특성상 소비자가 사용한 것이 제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보니 그 관계를 어떻게든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학원 끊는 방법은 대략 다섯 가지로 나뉜다.

1. 무시한다
학원 전화를 받지 않거나 끊는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다니는 동안은 뻔질나게 연락하다가 그만두는 날부터 주고받은 카톡의 1자가 사라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시 다니게 되면 또 얼마나 친하게 구는지 모른다. 강사도 사람이다. 무시하는 것이 본인에게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인데 적어도 그만둔다는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무작위로 걸려온 대출 상담 전화가 아니지 않나.

2. 강사의 품질을 격하한다
퇴원할 때마다 그 사유로 “수업이 쓰레기라 들을 게 없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 그래놓고 시험 때가 되면 매번 찾아온다. 만점에 가까운 결과가 나와도 학부모마저 “수업은 쓰레기지만 우리 애가 잘나서 잘 봤다”라는 말을 하고 나간다. 백화점 고객센터에서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그들을 블랙컨슈머로 등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산품이 아닌 사람인 나는 귀가 달린 까닭에 그 말을 듣고도,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안 오면 될 것을, 꼬박 3년을 오는 심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비슷한 사례로 “학원이 못 가르쳐서 성적이 떨어졌다”고 온갖 욕을 하고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박해성 그림

3. 난 당신이 싫어요
“우리 애가 선생님 싫대요”라고 학부모가 퇴원 의사를 밝혔다. 싫을 수 있다. 모든 강사와 학생의 합이 잘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뒤로 학생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왜 그러냐고!” “그럼 뭐라고 하고 그만두냐고!” 사유를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강박은 내려놓자. 아이가 학원을 안 간다고 하니 속상한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학원은 모자 갈등의 화풀이 장소가 아니다. 어제까지 잘 지내던 아이의 부모로부터 “선생이 싫어서 학원을 안 가잖아요. 책임지세요. 강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깨진다. 자매품으로 “선생이 우리 애만 차별했다면서요?”가 있다. 수많은 학생 중에 특정한 한 명만 골라서 싫어하기란 모두를 무조건 예뻐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4. 이기고 싶다, 격렬하게 이기고 싶다
간혹 인사권이나 공권력을 활용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문제는 ‘보충 시간을 우리 애만 불가능한 시간에 잡아서 안 다닌다’ ‘내 자식을 과외처럼 봐주지 않았다’ 등에서 시작한다. 이곳이 과외가 아니라 학원임을, 보충도 수강료 없이 자발적으로 하는 수업이며 공강 시간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설명하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끝날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은 학부모는 화가 난다. “참 논리적이시네요~ 싸가지가 없어서 못 보내겠네”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원장 바꿔!” “너 나랑 꼭 법원에서 만나자. 학원비 물어내게 될 거야.” 대체 나 하나를 이겨서 그들에게 무슨 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아이에게 쏟은 정성이 아까워지는 순간이다. 아무리 일면식이 없어도 제 자식 얼굴에 침은 뱉지 말아야지. 참, 학원비는 분당 수강료로 책정되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했다면 원비는 내야 한다.

5.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학원을 잘 그만두는 방법은 간단하다. 솔직히 말하고 오해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향후 다른 공부 계획이 있어서 그만둔다, 학원 다니면서 불만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채워지지 않았다,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등. 그래도 학원이 수강을 권유한다면 단호하게 거절하면 된다. 어제까지 멀쩡히 관계 맺던 사람을 오늘 와서 없던 사람 취급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수업을 돈으로 구입했을지라도 그 안의 강사와 학생은 잠시나마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시는 안 볼 사이일지라도, 이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바란다(그리고 우리는 의외로 금방 다시 만난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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