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공간은 단지 물리적으로 생활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물론, 그와 더불어 편안하고 풍족한 마음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하는 장소가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집의 참모습입니다.” 그러니 집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자는 단출한 오두막집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지은 14㎡ 남짓의 오두막, 벽으로 구분해놓지 않은 작은 공간에 주방·침실·서재가 펼쳐지는 일본의 목공예가 미타니 류지의 오두막 등이 예가 된다. 걸작으로 손꼽히는 필립 존슨이 설계한 원룸 ‘글라스 하우스’도 그 한 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지은 집이 원룸입니다. 즉 원룸은 먹고 자는 곳이라는 주택의 기본 정의에 가장 충실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택 내에 있으면 편리하지만 실제로는 필요없는 비실용적 공간을 하나씩 신중히 삭제해나가다 보면, 더 이상 들어낼 수 없는 마지노선에 도달하게 됩니다. 거기에 주택의 원형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주방은 어느 정도 어수선한 게 좋다”
작은 공간이라도 기분 좋은 장소, 특별한 공간이 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차이는 크다. 저자는 일본의 툇마루와 다실을 예로 들고 있으며, 우리나라라면 기름 먹인 황토색 종이 장판이 깔린 뜨끈뜨끈한 온돌방,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있는 마루 등이 그렇다고 한다. 그럴듯하다. 추운 겨울 집에 막 들어와 온돌방 한구석 이불 속에 손과 발을 넣을 때의 안온함, 여름 한낮에 마루에 누워 책 읽다가 살짝 졸 때의 편안함. 저자는 자기 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빈 공간에 서가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벤치를 만들었다. “매일매일 생활하는 집 어딘가에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만드는 것, 혹은 그런 장소를 찾아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생각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예컨대 벽난로 같은 것은 우리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지 않은가. 내부 구획이 지나치게 자잘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정반대 취향을 가질 수 있다. 커다랗게 하나로 열린 공간의 느낌을 좋아하는 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취향이다.
집을 짓는 건 건축가이지만 집을 가꾸고 궁극적으로 완성하는 건 어디까지나 거주자의 몫이다. 그런 완성에서 매끈한 대리석 바닥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가족이 자주 만져 생긴 난간의 좋은 촉감 같은 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장 집 한 칸 마련하기도 팍팍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 생각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팍팍하게 마련할 수밖에 없는 집이기에 더욱 소중히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