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좌담에 참석한 블로거 '블로초' 민경배 교수, 최내현 전 딴지일보 편집장(왼쪽부터).
〈시사IN〉은 인터넷 문화와 관련해 방담을 마련했다. 민경배 교수(경희사이버대 NGO학과), 최내현씨(전 딴지일보 편집장), 블로거 ‘블로초’가 참석했다. 이들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게시판에서 블로그로 이동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사회 : 인터넷의 ‘악플’에 대한 말이 많다. 어떻게 보는가.

민경배 : 전통적으로 공적 영역, 사적 영역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은 그 경계를 허물어버린 측면이 있다. 개인이 사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도 인터넷에 글이 올라오면 공개되어 공적 방식이 되어버린다. 또 이런 개인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다수가 되면 그때는 세력화가 된다. 전통 사회 메커니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이런 현상이 생기니까 그때부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새로운 원리, 공간적 특성을 인정하고 논의를 해야 하는데, 오프라인 잣대로 들여다보니까 자꾸 일탈로 간주하고 죄악시한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새로운 환경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

최내현 : 1990년대 초 PC통신이 생기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인터넷 공간에서 이런 기대와 달리 기존 지배적 담론을 강화하는 퇴행적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블로초 : 인터넷에 글을 쓰는 사람과 거기에 댓글을 다는 사람과 그 댓글에 댓글을 쓰는 사람들 3자가 모두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아직 모르고 있다. 몇 번 큰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이제 어렴풋이 감을 잡아가고 있다. 개인이 타격을 받는 일은 애석한 일인데… 이것을 네티즌 일반의 잘못이라고 하면, 그 다음에 답이 없다.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은 굉장히 소수다. 〈디 워〉 논쟁에서도 한 사람이 닉네임을 바꾸어가면서 1000개의 글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 논쟁에 뛰어든 것처럼 인식되었지만 사실은 다르다. 악플의 주범은 굉장히 소수다. 인터넷은 새로운 공간이다. 그 공간이 어떤 성격인지 익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 익명성이 문제인가.

최내현 : 그런 것 같지 않다. 한 여자 가수가 자살했을 때 몇몇 네티즌은 자기 실명을 남기면서 온갖 악플을 달았다. 그전까지는 이런 문제가 익명의 문제라고 했고, 실명화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민경배 : 인터넷 정책을 만들면서 경험적이고 실증적 연구가 별로 없다. 가령 악성 댓글과 실명제 같은 경우,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은 익명성 때문이다’라는 명제는 한국에서는 종교 교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실명 게시판과 익명 게시판의 악성 댓글에 대한 연구조차 없었다. 그런 헛다리 짚기가 상당히 많다.

블로초 : 오히려 익명성이 제거된 사회로 갈 수 있다. 게시판에 어떤 남자 사진을 올렸더니 인터넷 사용자들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신상 명세를 찾아냈다. 인터넷은 오히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민경배 : 개똥녀 사건 때 그 사람이 받은 공격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악성 댓글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신상 공개이다. 당사자에게는 두 번째가 더 피해가 크다. 개인정보, 주변 사람 정보가 유포되는 것은 사회적 사형선고다. 익명 악성 댓글의 피해보다는 익명성이 거세되면서 나타나는 프라이버시 침해가 더 큰 문제다.

ⓒ시사IN 안희태"이전에는 게시판을 중심으로 네티즌이 활동이 많았다. 지금은? 자기 블로그에 퍼다놓는다. 콘텐츠 소비 방식이 집단 소비에서 개인 소비로 옮겨가는 추세다"-최내현
블로초 : 인터넷 문화를 서비스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 네이버에서 댓글을 한 줄로만 쓰도록 되어 있었다. 한 줄이라는 공간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짧고 강렬한 것은 욕이었다. 지금은 그 서비스 방식이 바뀌었는데, 추천수 조회 같은 필터링 서비스를 이용하면 여론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댓글 추적 서비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신분을 속여가며 (때로는 공무원이라고 하고, 때로는 농부라고 하면서) 글을 많이 썼다. 예전이라면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로 문제가 되는데, 추적 시스템이 생기니까 그것을 찾아내는 ‘놀이’가 되어버리더라. 서비스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사회 : 요즘 인터넷 이용과 관련해 눈에 띄는 현상은 무엇인가.

민경배 : 지난 8월에 2007년 상반기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카페·커뮤니티 이용자 비율과 블로그·미니홈피 이용자 비율을 조사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매우 근소한 차이로 블로그 미니홈피 이용자가 앞섰다. 소통의 주무대가 게시판 형태에서 블로그 형태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 조사에서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블로그 공간을 인터넷에서 소통의 공간으로, 가장 희망스러운 공간으로 본다. 공중화장실 벽에 낙서하지만 자기 담에 손으로 낙서하는 사람은 없다. 게시판 공간은 공공의 공간이고 블로그는 자기 집이니까 사용자에게 책임성을 강하게 부여한다. 가정이지만, 온 세상 네티즌이 게시판을 안 쓰고 블로그만 쓴다면, 상당히 다른 인터넷 공간이 될 것이다.

최내현 : 세상 사람들이 블로그만 쓰면 굉장히 가식적인 사회가 될 것 같다(일동 웃음). 그거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일할 때 내부에서는 ‘인터넷의 예비군 훈련장’이라고 했다. 멀쩡한 사람도 군복만 입으면 껄렁대는 것처럼. 멀쩡한 사람도 딴지일보 들어오면 욕부터 한다. 기고도 그렇고, 게시판도 그렇고. 그러다가 블로그 사이트 만들었는데, 여기는 너무 착하더라, 서로 위로도 해주고. 처음엔 굉장히 좋았다. 조금 지나다 보니까 너무 심심하더라. 나도 블로그 예찬론자이긴 한데. 그것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필요하긴 하다. 이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사IN 안희태"인터넷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허물어버린 새로운 공간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없던 새로운 현상이다. 그 특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아직 새로운 환경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없다"-민경배
블로초 :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기존에 인터넷을 쓰지 않던 50·60세대가 인터넷으로 진입했다고 본다. 게시판의 논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 기존에 게시판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젊은 네티즌은 블로그로 이동했다.
상대적으로 게시판 사용자와 블로그 사용자의 논조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느낀다.

민경배 : 맞다. 지난해 한 교수가 게시판 분석 연구를 했는데, 정치·시사 기사의 댓글은 50대가 가장 많이 단다고 결론이 나왔다. 블로그가 더욱 활성화하면 인터넷 공간 안에서 기능적·정서적 이원화가 자연스레 나타나지 않을까. 게시판은 소리를 꽥 지르는 공간으로, 블로그는 의미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그렇게 되면 게시판에 악성 댓글이 많이 올라와도,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여기면서.

최내현 : 악플도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인터넷을 시작한 지 불과 10년이다. 오랫동안 인터넷에서 훈련된 사람은 사고를 안 친다. 신규 유저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신규 진입자들이 훈련이 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까.
개인화 추세가 분명하다. 예전에는 글을 올리면 게시판으로 퍼져나갔다. 주요 게시판에 그대로 퍼다놓는다. 그런데 지금은 주요 게시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런 문화가 없다. 이제는 자기 블로그에 퍼다놓는다. 콘텐츠 소비가 집단 소비에서 개인 소비로 옮아가는 추세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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