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메르스 환자가 완치됐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왔지만 그는 대놓고 기뻐하지 못할 것이다. 90명에게 메르스를 전염시킨, 이른바 ‘슈퍼 전파자’라서다. 그는 완치 후 자신이 문제의 ‘14번째 환자’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죄책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 책임져야 할 진정한 슈퍼 전파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지독하게 운이 나빴을 뿐이다.

그는 5월15일부터 5월17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폐렴 증상으로 입원했다가 같은 병실에 있던 첫 번째 환자에게 감염되었다. 이 병원에서 메르스라는 진단을 받지 못한 그는 병이 깊어지자 평택굿모닝병원을 거쳐 5월27일에서 5월29일까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렀고 5월30일에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은 5월20일에 첫 번째 환자에게 메르스 확진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뒤에 같은 증상으로 들어온 환자를 응급실에 방치했다. 병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응급 상황이기에 가족들이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는, 바로 그 ‘도떼기시장’에서 그는 계속 기침을 했을 테고 의료진은 가래를 뽑아냈다.

문제는 삼성서울병원이다. 최고의 병원답게 최초의 환자를 메르스로 확진했지만 그 이후 같은 증상의 환자를 격리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응급실 의사나 간호원, 이송요원에게 메르스의 위험을 알리지도 않았다. 정보를 은폐하려는 이런 태도는 5월30일, 이 환자의 확진 후에도 계속되었다. 언론은 그에게 ‘의료 쇼핑’의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하지만 그는 병이 치료되지 않아 병원을 옮겼고, 이후 악화되어 상급 병원으로 넘어갔을 뿐이다. 이런 정상적 절차를 ‘의료 쇼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6월5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야 정부는 6월7일 24개의 병원과 환자들 동선을 공개했다. 병·의원과 국민들은 비로소 메르스 전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6월6일 22명, 6월7일 23명을 정점으로 이후 확진자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6월23일 삼성서울병원 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자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씨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1991년 삼성에 입사한 이래 24년 만에 총수에 오르기 직전, 첫 번째 공식 기자회견을 사죄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90°로 머리를 숙인 대상이 과연 국민이었을까? 열네 번째 환자였을까?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6월17일에 이미 머리를 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충북 오송의 국립보건연구원으로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전인 6월11일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국회의원 앞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이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호언했을 때의 기개 그대로이다. 결국 그때 이 회장이 그랬듯, 병원장과 이사장도 대통령에게 사죄한 건 아닐까? 삼성물산 합병 건도 못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때 말했던 ‘국가 대개조’는 결국 ‘규제 완화’로 치닫나

삼성도 ‘궁극의 슈퍼 전파자’ 또는 ‘하이퍼 전파자’는 아니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방역 당국은 첫 번째 환자의 검사를 거부했다. 또 평택성모병원에 따르면 당국은 병원 스스로의 ‘코호트 격리’도 말렸다.

방역은 결단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혹여 그 시스템의 일부를 민간에 맡겼을 때는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무더기 감염이 예견될 때, 5월30일 열네 번째 환자의 확진 판정이 나왔을 때도 방역 당국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삼성에 자체 방역을 맡겼다. 심지어 보름이나 지나 대책본부가 마련된 뒤에도 대통령의 한마디로 민간 전문가(의사)가 방역 총지휘를 맡았다. 도대체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하이퍼 전파의 총책임자는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연이은 대규모 참사를 예비하고 있다.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세월호 참사 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국가 대개조’를 약속했지만 아뿔싸, ‘국가 혁신=규제 완화’가 그 결과였다. 심지어 그는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크루즈 산업(세월호가 크루즈다!)의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6월22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서울상공회의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규제 시스템의 ‘선진화’를 메르스 대책으로 내놓았다. 필경 정부의 후속 대책도 이를 따를 것이다. 공공병원을 강화하기는커녕 방역 시스템 전체를 민영화하려 할지도 모른다.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 보호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국가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바로 하이퍼 전파자다. 위헌도 이런 위헌이 어디에 또 있을까?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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