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 아니 여행이란 무엇인가? 자유·갈망·부유(浮游)·떠남·탈출·머묾·누림·일탈 따위 감정의 물기를 머금은 대상 혹은 개념이 아니던가. 내가 여행을 다녀왔다고, 그래서 여행서를 쓰겠다고 나를 찾은 (예비)저자들과의 과도한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이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그래서 출판사 이름에 덜컥 붙여버린 ‘노마드(유목민)’적 삶을 실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관심의 강도에 따라 도시에서 제공하는 것들을 배열”하라고 일러준 것처럼, 나는 여행자의 주관적인 관심을 ‘편집’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여행서 저자가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이데올로기 문제일 수도 있다. 거창하다고? 하지만 여행지의 풍경을 포착한 저자들의 글과 이미지를 살피다 보면 그들의 삶과 세상의 관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선택한 여행지와 여행 방식은 개인적 삶의 기억의 결과물이자 그들의 문화적·정치적·경제적 양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여행 초보자는 자신들이 처음 ‘누리는’ 여행의 스펙터클을 소개하느라 분주하다. 여행지의 ‘겉’에 환호하고, 찬미하고, 그 느낌을 수집하는 그들의 글을 어떤 이들은 ‘껍데기’라 일갈하고, 또 어떤 이들은 동질감을 느끼며 지갑을 연다.
지구의 여백 채우는 인간적 여행서 꿈꿔
여행에 관한 책은 지금도 부족하지 않다. 판매 중심적인, 여행의 본질을 인식하기보다 여행의 ‘표피’만을 건드린 책들이(북노마드의 책을 포함한) 넘쳐난다. 지구의 풍물이 아닌 지구의 여백을 채우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여행을 꿈꾸는 여행서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일 것이다. 여행서의 범주를 벗어나는 책들에게서 여행서의 참맛을 느끼는 까닭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숨기지 않는 여행, 자신이 체득한 ‘장소성’을 관광지로 인식하지 않는 여행, 문화와 역사를 매개로 일상성과 역사성을 들추는 여행, 무엇보다 여행이라는 행위에 압도되지 않는 여행을 담은 여행서가 독자에게 오래 읽히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여행서를 만들고 싶다. ‘소비주의 여행’이 만연한 이 시대에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책, 우리 사회와 자연이 앓고 있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책, 시대의 모순을 ‘소프트한’ 언어와 이미지로 고백하는 그런 여행서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여행을 실천한 누군가가 북노마드의 문을 두드린다면, 기꺼이 이윤을 포기하면서 그의 책을 만들겠노라고 감히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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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 여행 책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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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런 이야기도 책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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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서를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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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새로운 성지,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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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그대여, 홀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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