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DHEA, 멜라토닌, 세로토닌, 성장 호르몬…. 우리 몸을 지휘하는 호르몬 이름이다. 이들 호르몬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체 곳곳에서 놀라운 ‘마술’을 부린다. 우리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사랑에 빠지고, 야한 상상을 하는 것도 호르몬의 마법 덕이다. ‘김밥 할머니’가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호르몬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호르몬을 ‘삶의 지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체 내의 호르몬 양은 1g(체중이 75kg인 남성 기준)이 채 안 된다.

남성 호르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스토스테론이다. 이 호르몬은 남성의 생식선인 고환에 있는 5억 개의 라이디히 세포에서 매일 약 7㎎씩 생성된다. 테스토스테론의 기능은 다양하다. 2차 성징인 체모·수염을 돋게 하거나, 근육과 지방을 형성해준다. 또 성욕과 성 기능을 증진해주고, 활동성과 성취력을 늘려준다. 때로는 화를 내거나 바람을 피우는 데도 긴밀히 관여한다.

테스토스테론의 양과 전달을 조절하는 중추는 뇌에 있다. 뇌는 신체의 필요에 따라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허가 또는 제한한다. 마음이 행복하거나 흥분 상태가 되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자극하고, 반대로 화가 나거나 우울하면 테스토스테론 배출량을 억제하거나 줄여버린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서서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은 25세에 절정기에 달하고 40대부터 급격히 줄어둔다. 이 호르몬이 감소하면 성욕 감퇴, 발기부전, 집중력 결핍, 복부 비만, 우울증, 피로 따위 괴로운 일들이 줄줄이 일어난다. 이것이 여성의 폐경기에 비유되는 ‘남성 갱년기’의 시작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 낮아도 성인병 위험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떨어지는 증세를 의학계에서는 테스토스테론 부족 증후군(TDS:혈중 테스토스테론 양이 10nmol/L 이하로 떨어진 것을 말함. 정상치는 10nmol/L∼35nmol/L)이라 부른다. TDS와 그로 인한 발기부전은 성욕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발기부전이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발기부전이 그 같은 성인병을 유발하는 징조이다”라고 제이 리 박사(캐나다 전립선암센터 성 건강 클리닉)는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낮고 상대적으로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남성이 정상 남성보다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았다(〈호르몬 혁명〉에서).

10월7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아·태평양 성의학 학술대회에서 이성원 교수(서울삼성병원?비뇨기과)는 발기부전과 대사증후군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대사증후군의 위험 요소 다섯 가지와 발기부전 요소가 많이 겹친다”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대사증후군의 위험 요소 다섯 가지란 복부 비만, 높은 혈중 중성지방, 혈중 HDL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 혈압 상승, 높은 공복 혈당을 말한다. 국제당뇨병연맹의 정의에 따르면, 이 가운데 복부 비만과 두 가지 이상의 위험 요소를 갖고 있으면 대사증후군으로 분류한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진은 대사증후군과 낮은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명백한 연관성을 보고했다. 자료에 따르면, 대사증후군이 있는 비만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균 5nmol/L가량 낮았다. 테스토스테론이 낮으면 대사증후군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음을 뜻한다. 대사증후군은 널리 알려진 대로 당뇨병과 심장 질환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낮은 테스토스테론을 방치하면 당뇨병과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이성원 교수에 따르면, 2004년의 한 연구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정상인과 발기부전 환자의 주요 성인병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 발기부전 환자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이를테면 정상인의 고혈압 유병률은 19% 정도였는데, 발기부전 환자는 36%나 되었다. 또 심혈관계 질환은 정상인 7%?발기부전 환자 17%, 당뇨병 유병률은 정상인 4%?발기부전 환자 14%로 정상인과 발기부전 환자 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우울증 유병률도 다르지 않았는데, 발기부전 환자(25%)가 정상인(13%)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이제 성기능 장애는 단순히 성기능 장애로 끝나지 않는다. 성인병의 전조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아직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쟁’처럼, 성기능 장애가 먼저 나타나는지 성인병이 먼저 나타나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약효 넉 달 가는 주사용 호르몬 보충제 등장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발기부전 치료제와 호르몬 대체 요법 덕에 TDS와 발기부전 같은 성기능 장애를 극복하거나, 어느 정도 늦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발기부전 치료제는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져서 설명이 더 필요없다. 호르몬 대체 요법은 다르다.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발기부전 치료제처럼 이용자가 많지 않다.

발기부전 환자(왼쪽)와 정상인의 당뇨병 유병률을 비교 조사한 결과, 당뇨병 환자가 14%로 정상인의 4%보다 3배 넘게 높았다(오른쪽).
호르몬 대체 요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정제, 크림, 데포(depot)법, 패치법, 주사법. 입으로 삼키는 정제의 경우 사용이 간편하지만,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40~80%의 호르몬이 오줌으로 그냥 배설되는 것이다. 데포법은 이미 50년 이상 사용해온 방식인데, 국부 피하 조직에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고 그 효과를 비교적 오래 누린다. 파스처럼 상체나 팔에 붙이는 패치법과 몸에 바르는 크림은 매일 사용해야 하므로,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게다가 정제처럼 흡수율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바늘을 통해 호르몬을 주입하는 주사법은 효과가 꽤 오래 지속되는 장점이 있다. 과거에는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최근에 상당히 진화해 약효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제품이 나왔다. 이성원 교수는 “호르몬 대체 요법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은 크림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주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의 효과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용자의 60~70%가 효과를 보는데 성기능 회복, 자신감 증가, 탈모 방지, 복부 비만 감소 따위가 그것이다. 물론 심각하지는 않지만 방식마다 약간의 부작용이 따른다.

모든 사람이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방을 받기에 앞서 광범위한 검사를 해야 한다. 심장 및 순환기 기능, 성기, 간 전립선뿐만 아니라 혈액 분석 같은 진단학적 검사도 받아야 한다. 치밀한 검사에 걸려서, 혹은 지갑이 얇아서 호르몬 대체 요법을 못 받는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운동과 자신감,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얻는 삶의 생기가 그 어떤 호르몬 대체 요법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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